매거진 짤막하게

극단적 인간의 어중간한 날들

by 지예강

사회적 규약에서 비스듬히 빗겨나간 프리랜서는 하루 일과가 오직 스스로의 의지로만 흘러간다. 그 의지는 내게 주어진 '일(業)'에 의해 크게 좌우되곤 한다. 일에 치이는 날은 거짓말 조금 보태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쓴다. 스케줄에 업무 계획을 빽빽이 정리해 최대한 그대로 따르는 한편, 어떻게든 짬을 내어서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취미생활도 해낸다. 일이 하나도 없는 날도 느슨하게 짠 일정대로, 그러나 제법 바쁘게 움직인다. 오랜만에 친구도 만나고 기다리던 공연이나 전시, 영화도 관람하고 가보고 싶었던 맛집이나 카페도 방문한다. 일이 너무 많아도 갓생, 일이 전혀 없어도 갓생이다.


문제는 일이 어중간하게 있을 때다. 뭔가를 매일 조금씩 해야 하지만 전혀 부담스럽거나 급하지 않다. 아침 일찍 해치워버리면 좋지만 저녁 늦게 처리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뤄도 상관없어서, 미룬다. 그렇다고 일을 미루어놓은 시간에 다른 무언가를 할 생각은 안 든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마음껏 빈둥거리다가 귀찮은 마음을 애써 물리치며 겨우 책상 앞에 앉아 잠시간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린다. 일이 있는 듯 없는 듯하면 어이쿠, 혐생이 되고 만다.


1월의 보름이 이렇게 어중간한 날들이었다. 일을 했지만 안 한 것도 같고, 일 아닌 것을 했다고도 볼 수 없는 날들. 사실 일이 많은 날이든 일이 전혀 없는 날이든 내 기준에서 '이만하면 갓생'으로 치부한다지만, 진짜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고작'임을 안다. 그래서 이렇게 갓생도 될 수 없는 별일 없는 날들이 계속 이어지면 죄책감이 든다. 내 삶, 내 맘대로 꾸려가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며칠에 걸쳐서 봤다. 지금은 프리랜서지만 10년 가까이 회사 생활을 했던 씻지 못할(?) 과거가 있는지라 드라마 보는 내내 가벼운 스트레스를 앓았다. 언젠가 꼭 만난 적 있는 듯한 사람들. 난 저 수많은 인간군상들 중에 어느 타입일까. 흠결 없는 사람은 없고 저마다의 입장에서 그나마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건 똑같을 텐데, 저 집단 속에 있으면 난 오로지 방어적으로 내 편만 들게 된다. 공감능력을 잃어버리고 역지사지에 무능해지다 못해, 상대편을 죽도록 미워하게 되는 거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은 독성이 강해서, 잠깐 마음에 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온몸을 감염시킨다. 후유증은 지금도 여전하다. 몸이든 마음이든 돌보지 않게 되면 피부가 반응한다. 건조하고 가렵고 곪고 피가 터지고야 만다.


그래도 조금 그립기는 하다. 출퇴근의 지옥철, 월요일 오전의 형식적인 전체 회의, 보고를 위한 보고서 작성, 제안서 제출 전날의 밤샘근무, 업무의 연장 같은 뒤풀이, 몰래 하는 뒷담화마저도. 내향인도 사람이고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사회적 동물인지라 때로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실 난 직장인이 체질에 맞다고 늘 생각했고, 마지막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어쩌다가 개인적으로 일을 하나씩 받게 됐을 때만 해도 이렇게 곧장 프리랜서로 전향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적당한 데 있으면 들어가야지. 그런데 적당한 데가 나타나지 않았고, 프리랜서로도 생활이 유지된다는 판단이 서면서부터는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았다. 체질개선 필요 없이 비(非) 직장인의 삶에 바로 적응하고 만 것이다.


송길영 작가는 시대예보 시리즈(「핵개인의 시대」, 「호명사회」, 「경량문명의 탄생」)를 통해 말한다. 거대한 조직과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는 조만간 해체되며, 가볍고 빠르고 주체적으로 일하는 전문화된 개인-즉,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되는 개인이 전면에 나서는 시대가 올 거라고. 공감이 됐다. <서울 자가...>에 나오는 ACT 같은 기업 형태는 곧 과거형이나 과거완료형이 될지 모른다. 찰리채플린의 <모던타임스> 속 공장처럼. 그때 되면 진짜 책임자만 남게 될까? 드라마 속 백 상무가 평가하는 김 부장 같은 사람들, 일을 하는 기분만 내는 사람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사라질까? 몹시 효율적이고 생산성 있겠다. 그러나 허들이 높아진 만큼 제대로 뜀박질도 못해 보고 고꾸라지는, 그만 주저앉고 마는 사람들도 반드시 늘어날 것이다.


시대는 이미 격변하고 있고 고꾸라지거나 주저앉지 않으려면 내 이름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올바른 방향을 모색한 뒤 높이 멀리 빠르게 뛰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한다. 죄책감으로 귀결되고 마는 어중간한 날들을 허용해선 안 된다. 오늘을 기준점으로 둔 갓생(지금 당장 해야 할 거, 하고 싶은 거 몽땅 하느라 바쁜)이 아닌, 내일의 나에게 유효한 갓생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영 안 내키네. 세상사 나 몰라라 눈 막고 귀 막고 마냥 게으르게 살면 진짜 큰일이라도 나는 걸까.(굳이 다 떠먹여 주는 유튜브와 뉴스레터 좀 그만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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