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서 우러러보기
두괄식 아니면 미괄식이다. '내가 여행할 이 곳을 우선 한눈에 스캐닝한 뒤 그 속으로 보무도 당당히 뛰어들어보겠다' 아니면 '내가 골목골목 누볐던 이 곳을 새롭고 낯설게 바라보며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 전망대라 함은 이렇게 여행지의 첫인상 또는 마지막 인상이 되곤 하는데,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사방팔방을 한눈에 '내려다봄'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때로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 더 높은 것을 우러러보는 일도 생기곤 한다. 예를 들면 1)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두 언덕 위의 예수상(Christo Redentor)이거나 2) 코차밤바 산페드로 언덕 위의 예수상(Cristo de la Concordia)이거나 3) 홍콩 옹핑산 위의 포린사 청동좌불상(Tian Tan)이거나.
오르는 방법은 다양하다. 2013년 기준 홍콩. 퉁청(Thung Chung)행 MTR 타고 바다와 육지를 가르며 종점까지 달리면 란타우섬. 케이블카를 타고 25분 동안 높이 더 높이 오른다. 산과 바다를 아래에 두고 나긋나긋하게 이동하는 것도 잠시, 옹핑산 정상에 다다를 무렵부터 급격히 낀 운무로 시야는 막히고, 강풍으로 인해 좌우로 흔들흔들. (아, 팡지아수카르의 전조이자 복선이었나.) 내려올 때는 MTR-케이블카가 아닌 버스-페리를 이용했는데, 날씨만 좋다면 둘 다 추천할만하다.
2016년 기준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두 언덕 정상까지 산악 트램을 이용했다.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 입구에서 왕복 트램 이용을 포함한 입장권을 판매한다. 셔틀버스나 차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는듯한데, 걸어 올라가는 건 신변안전을 위해 추천하지 않는다. (그리고 710m 높이는 언덕이라기보다는 산에 가깝다. 참고로 관악산 정상은 632m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1개월 뒤 코차밤바에서는 케이블카를 이용해 보고자 했지만, 그날따라 운행을 하지 않아서 그 계단을 다 걸어 올라갔네. 물론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 내려오면서도 참 지루하다 느꼈으니, 오를 때의 고통과 분노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걸어서든 허공에 매달려서든 레일을 타고서든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정상까지 오르고 나면 눈 앞에 거대한 조각상이 위용을 떨치며 서(앉아) 있다. 아, 그 존재감은 어떠한가. 눈을 크게 떠도 그 전체를 한 번에 다 담을 수 없고, 게슴츠레하게 반만 떠도 세세하게 다 살필 수 없다. 압도적인 크기가, 어디 보자, 코르코바두 예수상은 그 키가 38m에 달하고, 코차밤바 예수상은 40.44m란다.(폴란드에 50m인 예수상이 있다는데, 2, 3위를 봤으니 1위도 보러 가야 하나.) 포린사 청동좌불상은 34m인데, 앉은키다. 눈 앞에 있어도 그 규모가 와 닿지 않는데, 다들 그런 모양이다. 그러니 너나없이 고개를 있는 대로 꺾은 채 한참을 그렇게 서 있는 거겠지. 그러다가 이 광경을 눈이 아닌 카메라로 담아보려고 셀카봉 든 팔을 최대한 뻗거나 아예 예술가처럼 혼을 불사 지르며 바닥에 드러누워 버리기도 하는 거다.
그 조각상들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를 간략하게 남기자면, 우선 코르코바두 예수상은 앞모습.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읽을 수 없어서, 보고 또 보고 그러다 아쉬워서 한 번 더 보게 되는 그런 얼굴을 가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은 건 저 섬섬옥수. 왜 이리도 곱고 가녀린지, 못질을 당하기엔 처연할 정도다. 그에 비해 코차밤바의 예수상은 뒷모습. 크고 굳건하고 단단하고 듬직한 풍채에 괜히 그 등 뒤로 숨어버리고 싶게 만든다. 실제로도 태양을 피해 그 그늘에 잠시 쉬었다. 포린사의 청동좌불상은 옆모습. 둥근 얼굴과 선한 눈매, 큼직한 귀, 그리고 방석삼아 앉은 연꽃잎의 곡선이 옆에서 슬쩍 올려다볼 때 더 부드럽고 넉넉해 보인다.
우러러보느라 뒤로 젖힌 목이 뻐근할 때쯤에야 사람들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는데, 혹시 잠시간 잊었는지, 여기는 이 바닥에서 가장 높은 곳. 예수님 또는 부처님의 품에서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가가호호 모인 저 도심의 풍경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곳. 혹은 장난감 같기도 하고. 예수님(상)이나 부처님(상)보다는 조금 낮지만 그래도 엇비슷한 위치(그래 봤자 발밑)에서 세상을 내려다본다고 생각하면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다.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본 인간과 인간의 삶은 얼마나 위대하면서도 또 얼마나 하찮은가. 잠깐 예수님의 마음, 부처님의 마음을 가늠해보는 거다. 물론 위대함보다 하찮음에 더 가까운 인간1로서 뭘 얼마나 헤아릴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어린아이와 같이. (몸이나 마음 말고 뇌가.)
죽기 바로 전 뉴턴은 이렇게 썼다. "세상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볼지 모른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나는 어린아이와 같다. 나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더 매끈하게 닦인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아 주으며 놀지만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온전한 미지로 내 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