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짤막하게

010. 인간관계, 송장의 날들

by 지예강

어떤 말들은 나를 주저하게 한다.

"네 생각은 어때?"라는 말. 어떤 주제에 대해 내 의견을 묻는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변을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무지하거나 무관심해서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것도, 조금 알아서 "이러이러하다"라고 몇 마디 주워섬기는 것도 다 싫다. 정답을 얘기할 필요도 없고 정답이 있는지도 모르는 주제라 해도 목소리를 타고 나오는 순간 생각은 왜곡되기 마련이고 그래서 오답에 가까워진다. 결국 그 목소리가 날 규정하고 판단하는 잣대가 되는 거다. 내가 내뱉은 말이 내 견해이자 고집이며, 또 내 편견이고 아집이다. 어떻게 사람이 100% 진정성 있는 말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어제의 진정은 쉽게 오늘의 허위가 되지 않나. 거짓을 자주 말하지만, 참을 말해도 엉터리가 되고 말 것을. 결국 돌아서서 하나씩 검열한 뒤에 이불 킥하며 후회하는 거다. 그래, 그나마 미리 첨삭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글이 낫다.

"부담 갖지 마."라는 말. 그 말을 하는 순간부터 상대방이 내게 베푸는 모든 것이 벽돌이 되어 쌓인다. 그 배려와 친절이 순수한지 아닌지 의심스러워진다. 내가 예민한 건가? 하지만 누군가가 츄파츕스를 주면서 부담 갖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1++ 한우 선물세트를 주면서는 몰라도. 호혜라는 단어가 나를 사로잡는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는 일을 끔찍이 여기기도 하지만,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언젠가 한쪽은 억울해진다. 그땐 부수기에는 너무 높아진 벽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고, 장도리로 때려 부순다고 해도 그 파편에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는 담담하고 산뜻한 관계가 되자. 아니면 차라리 솔직하게 말을 하자. 이걸 줄 테니 그걸 달라고. 그래야 승낙과 거절도 쉽고, 오해도 없을 테니.

사람을 대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떠보거나 재는 질문도 없고(그 와중에 있어 보이는 대답을 하고 싶다) 반납기한이 정해진 값비싼 선물도 없는(그 와중에 무이자 대출이길 바란다) 그런 관계는 숨바꼭질하던 골목길을 떠나는 순간 사라진 건가.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때론 지치고 피곤하다. 기가 빨려 좀비가 된 기분. 오늘 "만물의 영장이 만물의 송장이 되었다."라는 재미있는 말을 들었는데, 요즘의 나는 영장인 날보다 송장인 날이 많아 공감.(우습게도 송장의 경상도 사투리가 영장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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