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그렇게 대하지 말았음 해서
인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그 두 달 동안에 있었던 다른 괴랄한 기억. 빨간색 오토바이를 타고 농장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아저씨가 있었다. 누구는 그를 농장주라고 했고, 누구는 그를 (농)약 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정체는 알 수 없었다. 굉음을 내면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지라,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사람을 알았다. 어느 날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일찍 조퇴한 적이 있었는데, 늘 멀찌감치 있던 그 아저씨가 내 룸메이트에게 슬쩍 다가오더니, 날 찾았다는 거다. 그러면서 내 이름과 남자 친구 여부 등의 호구조사까지 했다는데. 그 뒤로는 부쩍 노동자들과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졌다. 아니, 사실 말하면 나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괜히 토마토 덩굴 너머에 서서 내가 있는 쪽을 향해 뭔가를 던졌다. 농담이나, 작은 토마토나, 추파를. 그러다가 최소한의 매너 거리(내 기준: 팔을 쭉 뻗었을 때 상대방의 몸이 닿지 않는 거리)마저도 슬그머니 넘어와서는 내 머리카락을 만지거나, 귓속말로 “Very beautiful."이라고 속삭이고는 능글맞게 웃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성추행이었다. “Very beautiful.”이라는 말이 기분 좋지 않고, 오히려 묘하게 기분 나빴으니까.(물론 난 very beautiful하지 않다) 난감하게 웃는 둥 마는 둥 했던 내 표정이 어느 날 어느 순간 싹 굳어지자, 다행히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나 때문인지 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 이상하게 농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시간이 좀 지난 후에 내가 그 아저씨를 본 건 “Treasure Island"라는 이름의,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얄팍한 주머니를 상대로 마련된, 슬롯머신 게임장이었다. 빙빙 돌아가는 그림 앞에 앉아 넋 놓은 표정. 그것은 우리 농장과 이웃 농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젊은 일꾼들의 얼굴에 자주 드리워진 표정이었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게임장에서 그 날 번 돈을 걸고, 밤에는 소고기와 맥주로 살을 지우는 사람들. 내가 기억하는 호주 농장의 단면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억. 내가 머물던 카라반 파크를 운영하는 사람은 중년의 쌍둥이 자매였다. 둘을 동시에 본 적은 거의 없고 보통 번갈아 가며 카라반 파크를 관리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농장에서 일하는 동양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그 사람이 자매 중 언니인지 동생인지 아직도 모른다. 어쩌면 둘 다였나.) 어느 날 옆 카라반 파크에서 놀다가 늦은 시간 돌아왔는데, 입구 즈음에서 딱 마주쳤다. 나보고 어느 카라반에 머무느냐고 묻기에, 공손히 대답했다. “ㅍoㄹty-ㅍouㄹ." 하지만 관리자 아주머니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내 발음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세상 모든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전혀 소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라고? 너의 그 구린 발음으로는 네가 몇 호 카라반에 머무르는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어. 제대로 발음하라고. F는 그게 아니야, R도 그게 아니라고!”) 난 양 손으로 손가락을 네 개씩 펴 보이며 수십 번의 (내가 아는) "Forty-four."를 외쳐야 했다.
몇 개월 뒤 퍼스에서 이웃으로 만난 Pat이라는 이름의 아주머니에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해보라며 "P"와 “A"를 수십 번씩 되뇌도록 했다. 난 꼭 그 두 분이 한국에 여행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이름을 괴상하게 발음해도, 또 “안녕하세요”를 “아뇽하세요”라든지 “감사합니다”를 “캄사합니다”라고 해도, 상냥히 대답해 줄 것이다. “네. 안녕하세요.”, “제가 더 감사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