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딴 곳에서

6. 0000년 0월

타인의 발가벗은 몸을 본다는 건

by 지예강

일요일 아침은 엄마 손에 끌려 공중목욕탕 가는 게, 초록색 때수건을 낀 엄마의 오른손을 피해 생떼 부리며 울부짖던 게 의례였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어느새 목욕탕 가는 발길이 뜸해지다가 뚝 끊겼고,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결국 동네마다 걸려있던 목욕탕 표식(♨)은 ‘수요일(목요일)은 쉽니다’라는 말과 함께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 뒤 찜질방이 성행하던 한 때가 있었지만 예전만 못하고, 이제 다 같이 깨벗고 몸을 씻는 일은 전설이 돼 버릴 공산이 커졌다.


그래서 남의 알몸을 본다는 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관람처럼 은밀한 일이 되었는데, 난 이국 땅에서 낯선 여인의 벗은 몸을 목도하곤 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찜질방 체험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나의 의지라고는 전혀 상관없이 겪은 일이었다.


첫 번째는 호주의 브리즈번에서였다. Tinbilly라는 호스텔의 8인실 도미토리룸에 막 짐을 부린 상태였는데, 돈 벌고 여행하며 호주를 떠돈 지 10개월 차였다. 그 날 도미토리에서 만난 룸메이트들과 함께 머물던 호스텔의 1층 바에서 맥주 한 잔을 하던 때였다.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 몹시 피곤했기 때문에 한 잔만 마시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맥주가 한 잔이 두 잔 되고 세 잔 되고 n잔이 되면서 취하기 시작했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 바에 있던 모두가 동시에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이 다 같이 흥이 오르기 시작한 거다.


갑자기 바에 있던 여자애들 몇이 튀어나오더니 음악에 맞춰 격렬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춤추는 여자애들에게 저그 잔으로 물을 뿌려대는 거다. 흥인지 술인지 신명인지 광기인지 아무튼 취할 대로 취한 여자애들이 젖은 옷을 찢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되었다. 나중에 들리는 소문에는 호스텔에서 돈 주고 고용한 스트리퍼라더라는. 뭐 덕분에 다음날 호스텔 숙박객들은 좀비처럼 숙취에 시달릴 수 있었고, 호스텔은 돈 좀 만졌겠지.



술 먹고 나면 이게 문제야. 다음날 되게 우울하다니까.


김중혁 「종이 위의 욕조」『가짜 팔로 하는 포옹』


두 번째는 인도에서였다. 띠루말라 띠루빠띠를 혼자 여행할 때 터미널에 있는 공중 화장실에서였다. 인도는 볼일을 보고 물로 뒤처리를 하는 풍습이 있고 대개 변기마다 그 뒤처리를 위해 호스가 달려 있지만, 아닌 경우에는 공용 공간에 물이 가득 찬 거대한 드럼통(수도시설이 여의치 않고 정전이 잦아서 물을 받아놓을 수 있을 때에 받아 놓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과 물바가지가 있다. 후자의 경우 보통 바가지에 물을 떠서 변기 칸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그 터미널 화장실에서 홀딱 벗고 그 트렁크 물로 몸을 닦는 할머니가 있었다. 날보고 멋쩍게 웃던 그 표정.


사진 034.jpg 띠루말라 띠루빠띠는 사실 종교적인 이유로 머리를 벗은(?) 사람들이 더 많다


세 번째는 볼리비아에서 우유니 투어를 할 때였다. 둘째 날 Arbol de Piedra에 감동하자마자 시선을 빼앗은 것은 마치 아이스크림을 층층이 쌓아놓은 듯 오묘한 풍광의 산이었다. 지프차가 잠시 시동을 끄자, 영국에서 온 친구와 미국에서 온 친구가 갑자기 짐을 실어 놓은 차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오르는 거다. 그리고는 입고 있던 셔츠와 브래지어를 벗어던지고 아래에 있던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는 과감함.

DSC03540.JPG 바람이 다 벗겨버렸네

마지막 네 번째는 아르헨티나에서였다. 살타에서 칠레의 산 페드로 아따까마로 가는 장거리 버스를 타기 위해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간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 전조등에 의지해 버스 터미널로 가는데 갑자기 풍만한 가슴들이 택시 앞으로 돌진했다. 마치 불나방처럼. 짙은 화장과 딱 붙는 팬츠, 망사스타킹을 신은 그 여인들은 터미널 주변에서 환락을 파는 중이었는데, 택시에 손님(나=여자)이 있는 걸 알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쨌든 나는 벗지 않은(?) 상태에서 남의 알몸을 일방적으로 본다는 건 꽤나 자극적이고 괴상하고 당황스럽다. 그러니까 아직도 눈에 또렷하고 기억에 선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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