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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강 Aug 06. 2019

017. 컨디션, 음악, 갤럭시 버즈

 밤잠을 설치고 출근한 월요일. 어제 오후 회의가 끝난 뒤 기진맥진한 상태였는데, 바쁘게 처리해야 할 업무 때문에 야근까지 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거의 곤죽이 되어 있었는데, 그 피로는 오늘 아침까지 엉겨 붙어 몸을 일으키기가 몹시 힘들었다. 


  출근한 순간부터 기상 시간에 대한 자율성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어쨌든 미적미적 일어났다. 밤새 흘린 땀을 씻어냈는데 샤워 부스를 나온 순간부터 다시 끈적해지기 시작할 때의 기분. 아침으로 먹은 요거트가 유통기한이 지났음을 알았을 때의 기분. 바쁘게 준비하는 와중에 욕실의 물때나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이나 건조대에서 걷지 못한 빨래나 바로 치우지 못한 컵이 자꾸만 눈에 들어올 때의 기분. 그런저런 기분들이 두껍게 쌓인 피로와 합쳐져 출근길의 컨디션은 난조였는데, 아직 훅이 남아 있었다.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면서 이어폰을 귀에 꽂았는데 왼쪽이 들리지 않는 거다. 이미 고장난지 오래된 뱅앤올룹슨을 집어 나온 거였다. 버리지 않고 선반 위에 올려놓은 채 까먹은 게 잘못이었다. 아니, 그래도 늘 쓰던 AKG가 늘 있던 테이블 위에 있었을 텐데 왜 습관을 거스른 걸까. 


  그나마 음악으로 컨디션을 제어하는데, 컨디션 난조 상태에서 음악을 듣지 못하면 내 컨디션은 어떻게 되는 건가. 화가 난 상태로 오른쪽 귀에 의지해 음악을 들으며 출근했다. 이어폰은 항상 이렇게 왼쪽 아니면 오른쪽만 망가진다. 유선의 문제다. 그래서 퇴근길에 갤럭시 버즈를 샀다. 가까운 삼성디지털프라자로 부랴부랴 달려가서 몇 분 만에 구입하고, 지하철 역으로 걸어오는 동안에 제품을 뜯고 페어링을 했다. 업템포가 필요해서 DPR LIVE를 플레이리스트에 올렸다. 좋군. 음악도, 갤럭시 버즈도. 


  뱅앤올룹슨은 회사 책상 위에 두고 나왔고, 여태껏 쓰던 AKG는 뱅앤올룹슨이 있던 선반 위에 올려놨다. 또 습관을 거스른다 해도, 한 귀로 음악 들으며 씩씩댈 일은 없겠지. 다음 주까지 계속 격무에 시달릴 예정인데, 갤럭시 버즈가 내 컨디션 제어를 잘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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