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을 다 끝내고 돌아온 밤, 그때부턴 하고 싶은 것을 할 차례.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별점 4.5점에서 5점으로 바꾼 영화가 있어 너무 궁금했었다. GV도 있었는데 미처 몰라서 도전도 못해봤다. <지구 최후의 밤>. 상영관 수, 상영 날짜, 상영 시간 모두가 이 영화를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싶은 컨디션이라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다가 겨우 주말 티켓을 예매했는데, 회사일 때문에 취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궁금증은 더 증폭되었고, 이 영화를 못 보면 오늘 밤이 지구 최후의 밤이지 뭐겠냐 싶은 생각도 들고 그랬는데.
오늘 오후 갑자기 당근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어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카페까지 찾아갔다. 태어나서 당근케이크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처럼 그 맛이 궁금했으나, 포크 몇 번에 내가 왜 그랬나 싶은 마음. 음식은 남기는 것이 아니니까 꾸역꾸역 먹으면서 다시 <지구 최후의 밤> 상영관과 날짜와 시간을 살펴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마땅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미뤘던 일을 하려고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먹고 싶고 궁금했던 당근케이크는 다 먹었고 보고 싶고 궁금했던 영화는 볼 수가 없으니, 그땐 해야 할 일을 해야지. 환멸과 권태에 시달리는 사람은 좌절과 절망에 무디기 마련이다. 하고 싶든 아니든 궁금하든 아니든 해야 할 일은 그냥 무심히 하면 된다. 그 일을 해냄에 있어서 엄청난 기대도 없고 그렇다고 시원하게 망칠 의욕도 없고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결국 웃으며 하든 울며 하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하는 거다. 해야 하니 할 거란 걸 알았다. 난 꾸준히 그래 왔으니까. 몸을 배배 꼬는 것도 잠시, 오늘의 작업을 시작했고 뭐, 때 되니까 끝났다.
해야 할 일을 다 끝내고 돌아온 밤, 그때부턴 하고 싶은 것을 할 차례. 그리고 그건 <지구 최후의 밤>을 보는 것. 현재 상영작이지만 다운로드할 수 있었고 집에는 프로젝터와 스크린이 있다.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과 오뚜기 직화닭발을 공수해 영화 관람 시작. 500미리리터 캔맥주도 어질어질하고, 편의점 닭발도 어질어질하고, 그런데 그게 영화가 어질어질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궁금하고 더 궁금했는데, (당근케이크와는 달리) 영화를 다 보고 나니까 더더 궁금하다. 일단 '지구 최후의 밤'이라는 영화 속 영화 타이틀이 나온 직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떻게 원테이크로 할 수 있었지? 그리고 꿈과 기억의 혼재 속에서 마구 뒤섞여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단어와 이미지들(내가 놓친 것까지 포함해) 그 하나하나가 뜻하는 바는? 이 영화는 하지에 보는 게 좋은가, 동지에 보는 게 좋은가 등등. 그러나 제일 궁금한 건 이동진 영화평론가님의 앵콜 GV 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