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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고 쫓기는 삶에 대하여 (원인파악을 위한 회고록)

by 꿈꾸는꾸리



또 어쩔수 없이 회사에서 토내해듯 글을 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잡생각을) 기록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회사가 고맙기도, 밉기도 하다.



화두를 던질까 말까

이번주 초대한 피디님네와의 금요일의 바베큐파티를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처음보다는 조금 덜 부담스럽게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긴하다. 일전에 초대받은 경험 덕분에 우리집에 손님을 초대할 때, 조금더 유연하고 편안한 자세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옆옆집은 우리 가족을 처음 초대해준 가족이다. 집을 짓고, 사람들이 내심 초대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 부담스러우면서 숙제처럼 느껴졌었다. 그리고 나는 무조건 잘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유형이기 때문에, 항상 누군가를 초대해놓고 부담스러워 했다. 하지만 이 부부가 먼저 초대를 해줘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소통해야하는지를 경험하게 해줬다. 뭐 대는대로 하든, 열심히 철저히 준비하든, 내가 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다 되는거였는데… 그걸 알게해줘서 고마웠다.

아무튼, 이 가족을 왜 이야기했냐 하면, 이 피디님의 책을 읽고, 나름 속마음(?)을 알게 되면서, 어쩌면 나의 고민인 이 주제에 대한 화두를 혹시 던져도 괜찮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주제는 바로, “불안”.



불안의 근원

그렇다. 최근 나의 화두는 불안감이다. 나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최근에는 불안감이라는 표현보다는 “쫓기는 삶”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거 같다. 불안해서 미칠거 같은 상황에서는 조금 벗어나고 있는거 같아서이다. (올 1월에는 손이 덜덜 떨릴정도로 불안했다.)


왜그럴까. 난 왜 불안할까. 어쩌면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내가 처음 기억 하는 그 순간부터 부모에게 칭찬받고, 평가에 대한 결과로 논해지는 말들을 들었을 때부터 형성된 것이지않을까 싶다.


나의 아버지는 선생님이셨다. 재작년 학교에서 장(교장이라고하는)을 맡고 정년퇴임을 하시기까지 내가 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성취를 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항상 학교에서도 점수를 위해 프로젝트를 하고(시범학교 같은), 대학원을 두번이나 다닌. 여행을 가도 꼭 전국 팔도 지도 인증스탬프를 기어이 받아야 하는. 그리고, 그 “성취지향적인 면모“는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어릴적부터 새해 새뱃돈을 받는 자리에서 올해 목표에 대해 말해야 했고, 아빠는 사촌들에게까지 “그래서 올해 목표는 뭐니?” 라고 물으셨다. 그리고, 시간 흐름에 맞춰 내가 항상 듣던 말. “어디 대학갈거니?”, “취업은? 결혼은? 애는 언제 가지니? 애둘은 낳아아지?“


그렇다. 나는 저 미션을 다 해냈다. 여기까지 미션 클리어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매번 아빠에게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든 생각이 바로 ‘꼭 보여줄꺼야. 본때를 보여줄꺼야.’ 였다. 아버지의 그 말들이 설사 나를 위한 것이였음에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최선의 결과를 이루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선한 응원의 말들이었음에도,아빠가 던지는 그 의문문의 기저에는 의심과 걱정, 불안이 있었다. 아버지에게 저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알수없는 복수심에 타올랐다. 그리고 꼭 성공하리라 이를 갈았다. 보란듯이 보여줘서 더이상 나에게 이런 잔소리를 하지 않길 바랬다. 그리고 나를 항상 내리깔고 보는 듯한 태도가 느껴졌다. 그래서 꼭 아빠가 생각한 것보다는 더 잘나지고 싶었다. 딱 그 정도만 뛰어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원을 갔고, 대기업을 갔고, 결혼을 매우 제때(연애2년후) 괜찮은 사람과 했고 (사내커플), 아이를 제때 낳았고(신혼2년후), 둘째 낳아야지~ 란 소리를 듣기 싫었는데 무려 14개월차이의 연년생을 낳아서 둘째낳으란 소리를 원천 차단하기에 이르렀다.(심지어 아들,딸. 끝) 난 그렇게 어디가도 자랑하고 싶은 야무진 첫째 딸이 되었다.


내가 둘째까지 낳고나서, 솔직히 내 아버지를 바라보며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이제 벗어날 수 있다.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이제는 뭘해도 내가 아빠보다 못한 것은 없었다. 나는 당신보다 돈을 어쩌면 더 벌고 있었고, 당신만큼 애 둘은 낳았으며, 오히려 재테크도 열심히 해서 집까지 짓고 아버지께 떵떵거리면서 으름장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의심의 눈초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아주 오랜 유년시절부터 지속되온 그 걱정과 의심의 눈초리에서.


일단 부모님이 보기에 꽤 괜찮은 내가 되고서는 나도 스스로 만족감이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집짓기라는 목표를 끝내고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동안의 나의 삶은 마치 한곳만 바라보며 달려온 경주마 같았다. 여전히 빚도 있고, 책임져야할 부분도 있어서, 결국 그것은 나의 task 로 여전히 현실에 존재한다. 그래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목표를 수립하면서 나아가고는 있지만…. 뭔가 마음한켠이 너무나도 이상했던 것이다. 왜 이렇게 길잃은 경주마처럼 마음이 불안할까?


나는 그동안 무엇을 기준으로 목표지향적이고, 성취지향적인 삶을 살아왔을까? 그러자 내 머리속에는 바로 ‘아버지’가 떠올랐다. 난 너무나도 잘난 딸이되고 싶었다. 그래서 저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30대 중반쯤 되어 일단 잘 막았다. 이제는 우리한테 조언은 구해도, 잔소리는 안하신다. 정확히는 하실 게 없으신거다. 이제 무시 받지 않는다. 해방이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살아오면서 남겨져 버린 이 “성취지향적인 면모”로 인해, 나는 여전히 뭔가를 이루기 위해 항상 조급해하며 주위를 둘러보며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모르겠다. 나는 이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평생 왜 이 목표를 설정했는가?의 대답이 결국 한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그가 아무말도 하지 않게 되자, 여러가지 주위 일들에 흔들리면서 목표와 미래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걱정의 육아 vs. 믿음의 육아

남편과 비교를 안할 수 없다. 남편의 부모님은 만나뵈면 알겠지만 너무 편하다. 정말 우리 부모님과 다르게 잔소리를 안하신다. 한 예로 남편의 부모님은 대학진학할 때 어디 갈지 한번도 물어보지 않으셨다고 한다.아, 믿음의 육아다. 자식 잘 되길 바라겠지만, 그것은 헤쳐나가는 본인이 더 고민이 많고 고군분투 할 것임을 이미 아셔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시부모님들이 원래 타고나시길 거기까지 예민하게 생각하시진 않으셨는지 몰라도, 남편의 부모님은 그렇게 남편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서계셨다. 내가 봐도 그렇다. 항상 느티나무처럼 편안하고, 시댁 식구랑 여행을 가면 불편할 일이 하나도 없다. 솔직히, 만나면 항상 힐링하고 온다.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그렇다. 남편이 자란 환경은 “믿음의 육아” 라고 칭할 수 있겠다. 나는 반면 “걱정의 육아” 였다. 위에 말했듯우리 부모님이 물어보는 것들은 모두 나 잘되라고 말하시는 거였겠지만… 기저에 깔려있는 그 무시받는다는 느낌. 걱정, 우려 속에는 ‘너가 잘 할수 있을까?… ’ 라는 의심이 말 속에 녹아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던거다. 그건,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런 육아를 받으면서 자랐다.


물론 부모님에게 감사하긴 하다. 덕분에 이 갈면서 잘 커서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내 아이들에게는 이 “쫓기는 기분”을 평생 달고 살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아빠한테 받아 왔던 의심과 불신으로 느껴졌었던 그 걱정들. 학교는 어떻게 할 거냐 취업은 어떻게 할 거냐 결혼은 어떡할거냐. 애는 어떻게 할 거냐 둘은 낳아야지.. 부모님은 걱정하는 마음으로 한 거 알지만 나는 항상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살아 왔고, 그래서 애 둘 낳았을 때 ‘아 이제 진짜 끝이구나. 더 이상 나한테 그 다음을 요구 하진 않겠지.’ 라고 생각했다. 간섭 걱정 관심 그거 덕분에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었고 잘 됐지만. 결론적으로는.


하지만 항상 그런 말을 듣는 당사자는, 결론적으로, 듣고 싶지 않았다. ‘더 잘 돼서 본때를 보여줘야지.’ 란 생각과… ‘나한테 자꾸 물어 본다는 거는 나를 못믿는다는 거네.’ 이런 생각만 계속, 계속 들었다.


아아. 남편도 지금 그런 마음이겠지.

독립을 꿈꾸는 남편은 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성공이라는 프레임을 강제로 씌워서 도달하기를 종용했다.


남편은 이렇게 느낄거 같다. ‘이 굴레는 저 사람이(와이프) 생각하는 그 지점까지 도달 해야 끝나는 일’ 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내가 아빠한테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부모의 긍정적인 영향이든 부정적인 영향이든 부모에게서 받은 거 그대로, 그렇게 크게 되는 거. 무섭지만 맞는말인거 같다.




내가 가장 닮기 싫어하는 모습을

내가 남편에게 행하고 있다.

남편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대학 어디 갈 건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한 번도 물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와는 너무 다른 부모님을 둔 남편은 이런 나를 와이프로 만나서 숨막히고 답답할거 같다. 내가 살면서 너무 답답하고 앞만 보며 달리는 경주마처럼 내가 이걸 왜 해야 되는 지도 모르고, 내가 하고 싶은 건지 모르고, 나는 그저 아빠한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 살았을 뿐 이었는데. 남편이 지금 이런 심정 아닐까?


내 남편이 나한테 지금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진짜 부자 되고 진짜 빚을 다 갚고 진짜 사업 성공해서 나한테 본때를 보여줘야지 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내가 가장 괴로워 했던 부분이 그 아빠의 말들이었고, 그 때마다 내가 품었던 감정이 저거였는데. 똑같잖아.

결국에 나는 그 말들에 지기 싫어서 사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로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결혼 집까지 좋은 결실들을 맺었지만, 내 마음 속에 상처와 트라우마가 생겼다. 뭐랄까 계속 걱정하고 계속 쫓기면서 사는 이 마음. “이걸 해야 돼.” 라는 그 압박을 스스로 만들어서 거기에서 스스로 옳가매면서 살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항상 쫓기듯이 산다. 뭔가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가고 있다. 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데 충격적인건 그렇게 해서 트라우마가 남았던 내가, 남편에게 똑같은 잔소리를 하면서, 채찍질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래서, 그 의심과 걱정의 말들을 들은 남편도 나처럼 똑같이 “본 때를 보여줄거야.” 라는 마음으로 이를 갈며 살게끔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 중반,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가 맞는 방향인지 모르겠다. 목표를 세워 놓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서 계속 계속 몰아 붙이면서 가는게 맞는것인지. 나는 그것 땜에 과실은 감사하게도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다 이루고 나서도, 다음으로 진전함에 있어서 나도 모르게 끊임 없이 압박을 받는다. 뭔가 더 해야 될 거 같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여유가 없다.



남편에게 내가 아빠에게 들었던 걱정의 의문문을 시전하여, 결국 내 남편이 성공하면 된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원래 될놈될은 성공할건데 뭐하러 그러나. 그런 의심의 눈초리가 트라우마를만드는 짓인거 아닌가.


그럼에도.

남편과 나는 인생의 동반자이고, 동업자이다.

같이 인생을 꾸려가는 한 배를 탄 사람으로써 어느정도의 성과압박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 네가 잘되서 좋아. 축하해. 이건 오히려 자식한테는 해줄수 있는 말이지만, 남편과 나는 잘되고 못되고가 완전히 연동되어 있는거 아닌가?



어째뜬 이번 남편과의 대화로 몇 가지 도달한 깨달음의 부분은 이거다.


1. 나의 불안감의 근원은 ‘걱정 육아’에서 온거 같다. 의심을 증명하고, 부셔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달려오던 경주마는 목표를 잃자 갈길을 모르게 되었다. 그리고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제발 내 자식에게는 ’걱정 육아‘를 되물림 하고 싶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남편이 받은 ’믿음 육아‘를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노력해야한다)


2. 그렇게 나의 인생 복기를 통해 ’쫓기는 듯한 마음‘에 대한 원인 파악은 대충 된거 같다. 하지만 쫓기는 기분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모르겠다.


3. 역지사지. 남편의 사업에 대해서 말인데, 무조건 성공 시키고 말리라는 그 생각으로 남편을 압박하는 자세는 버려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 되든 못되든 흘러가는대로 되는 것이며, 남편에게 가스라이팅을 시전해서 나와 똑같은 트라우마를 심어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너무 놀랐다. 그래서,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멈춰야한다고 느꼈다.


4. 제 버릇 남 못준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남편이 압박 안하면 더 잘할수 있지 않냐 하길래 내가 ’오빠 만약 내가 오빠를 키웠으면 서울대 갔을수도 있지 않을까?ㅋ‘ 라고 했다. (무튼 압박해서 더 잘 됐을거란 소리임)

아아. 난 멀었다. 나는 아직도 압박을 통한 성과창출의 믿음을 믿는 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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