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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Oct 24. 2022

심리상담은 나약한 사람들만 받는가


심리학 전공자들 사이에서 통설처럼 전해지던 얘기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심리학을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는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심리적인 어려움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해결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심리학을, 그것도 임상이나 상담심리 분야를 공부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한때는 나도 그게 진실인 줄 알고 살았다.


학부 시절의 난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는 심리학과가 없었다. 그렇다고 편입을 준비하거나 수능을 다시 보기에는 자신도 없어, 어차피 대학원에 진학할 거 학부 때는 유사 분야를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전공이었던 아동학과에도 심리검사 수업이 있어서, MMPI나 SCT, 로르샤하 검사 같은 것들은 직접 받아보기도 했는데, MBTI 검사는 그렇지 못했다. 심리검사 수업 교재에도 짧게만 소개되었을 뿐이었는데, 지금 같이 MBTI가 유행이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어서 궁금했다. 교내 학생 상담센터에 가면 받을 수 있다는 얘기에 그곳을 찾아갔다. MBTI 검사를 왜 받으려고 하냐는 질문에 심리학을 전공하려는데 이 검사가 궁금하다고 하자, 담당 선생님은 심리학을 공부하려는 동기가 혹시 내 문제 때문은 아닌지를 물었다. 딱히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대다가 눈물을 흘렸는데, 나이가 지긋한 그 선생님도 본인의 문제 때문에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얘기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면서.


그때부터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심리적인 문제나 상처들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믿고 살았다. 대학원에 입학해서 공부를 할 때도, 주변 사람들을 보면 나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심리치료 수업 시간에는 석사 과정 생들끼리 한 명은 상담자, 한 명은 내담자 역할을 하면서 실습을 하곤 했는데, 그때 토로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가 있었다. 심리치료자는 자신의 문제로 내담자에게 역전이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공부할 때에도, 그래 이렇게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니까 더 조심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수련을 마치고, 자격을 취득하고 나서 센터를 차리고도 시간이 흐른 후니까 말이다. 심리상담센터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크기는 상담을 받고자 하는 욕구와 비례하지는 않았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심리상담에 대한 욕구가 더 크지는 않다는 얘기이다. 어떤 사람들은 저 정도면 괴로워서 견디기 힘들 것 같은데도, 당면한 큰 문제를 해결하면 심리상담을 더 이상 받지 않기도 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은 채로. 또 어떤 사람들은 심리적 어려움이 크지 않고,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가 아닌데도 심리상담을 지속적으로 받고자 하였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들이 그랬다. 내 마음이 어떤지 살펴보려고 하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채워주고 싶은 사람들. 절대로 나약하고 힘든 사람만이 심리상담을 받고자 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을 보고 나니 내 마음의 결핍과 상처들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인간은 우주의 티끌조차 안 되는 불완전한 존재일 뿐인데, 살아가면서 어떻게 상처받지 않고 결핍 없이 살 수 있으랴.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는 동기는 내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내면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 인간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던 것이다. 심리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결핍이 있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시행착오를 겪을 테고, 그 와중에 배우며 살아갈 것이다. 심리상담을 하면 상담자가 일방적으로 내담자를 돕는다고 느끼지만, 나도 내담자들에게 많은 걸 배운다. 이렇게 결핍 있는 인간들은 서로 어우러지고 도와야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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