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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Oct 28. 2022

직업으로서의 심리상담가


 초등학교 졸업 후부터 임상심리 수련을 받을 때까지 함께 했던 나의 첫 강아지 앤디가 꿈에 나왔다. 친구들은 강아지 이름이 앤디라는 걸 들을 때마다 ‘너 신화 팬이었어?’ 하고 물었지만, 사실 앤디라는 이름은 god 손호영의 영어 이름에서 따왔다. 그 무렵에는 god의 육아일기가 방영되면서 god의 인기가 높았는데 다수의 친구들처럼 손호영의 자상하고 따스한 눈웃음에 매료된 나는 강아지의 이름을 지을 때도 손호영을 생각했다. 그런데 반전은 지금 다시 찾아보니 손호영의 영어 이름은 앤디가 아닌, 앤드류라고 한다.


 어쨌든 6년 만에 꿈에서 다시 만난 나의 앤디는 예전에 작별 인사를 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앤디가 세상을 떠날 무렵, 나는 집을 떠나 수련 받는 병원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근무를 하는 토요일이었는데, 언니한테 연락이 왔다. 앤디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근무가 끝나고 본가에 가니 앤디는 나를 알아보고는 꼬리를 약하게 흔들고 살짝 걸어오기도 했는데 힘겨워보였다. 힘을 내서 일어선 건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그때뿐이었고, 그 시간 이후로는 일어서지도 못한 채 누운 상태로 똥오줌을 쌌다. 곧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걸 짐작했지만, 사실 그때의 난 외면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얼른 떠나는 게 앤디한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몇 년 간 가족들은 어떤 이유들로 앤디를 제대로 케어해주지 못하는 상태였고, 나또한 집을 떠나있는 상태인다가 돈도 못 버는 대학원생이었고, 그러고 나서도 돈을 못 버는 수련생이었기에 앤디가 아픈 것 같아도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다. 돌봄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상태로 늙어만 가는 앤디가 안쓰러웠고, 또 내가 돌봐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더해져서 이제 평균 수명 정도는 살았으니 그냥 죽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부끄럽지만 종종 했다. 그렇기에 앤디와의 이별이 그렇게 슬플 거라고 짐작하지 못했다. 


 꿈에서 만난 앤디는 마지막 그 모습처럼 하체를 일으키지 못한 채 소변을 보았고 하얀 털이 노랗게, 아니 누렇게 물들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앤디가 떠나고 나서는 매일 매일이 슬펐다. 그러다 그 매일이 종종으로 바뀌었고, 이따금씩으로 바뀌었다가, 앤디를 잊고 지내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이제는 앤디가 떠오르는 순간에 잠깐만 슬펐고, 슬픈 마음보다는 그리운 마음이 컸는데, 왜 갑자기 불연 듯 앤디가 꿈에 나타난 걸까. 


 생각해보면 요 며칠 간 반려동물에 대한 죽음을 여러 번 들었던 것이 화근인 듯 했다. 며칠 전, 오래 키운 반려견을 떠나보내게 된 내담자와 슬픔과 애도에 대해 깊이 있게 얘기를 했고, 그 회기를 마친 뒤에는 몇 달 전 같은 주제로 얘기했던 다른 내담자와의 상담을 떠올렸다. 인테리어 가게 사장님과 반려견에게 미끄럽지 않은 장판을 고르겠다는 얘기를 하다가 사장님이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며 사고로 떠나보낸 본인의 반려견 얘기를 했다. 함께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는 선생님은 얼마 전부터 반려묘가 많이 아프다고 했는데,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가 전해오는 슬프고 힘든 이야기들은 대체로 일과 후에는 잊어버리려 하는 편이지만, 때때로 일과 후에도 내 마음 속에 남아있을 때가 있다.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도 그랬던 모양이다. 상담을 하는 동안 내담자의 얘기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내담자가 경험했던 세계에 들어가 함께 서서, 그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듣게 된다. 깊이 있는 공감을 하기 위해 주의를 집중하면서 내담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려 하기에, 50분이 끝났다고 해서 내담자의 세계에서 문을 닫고 나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초보 상담가였던 시절에는 퇴근 후 그 내용들이 더 많이 떠올랐던 것 같은데, 그것이 상담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도 아닐뿐더러 상담가인 나를 쉽게 소진시킬 수 있는 위험한 요인인지라 기억이 떠오르려 할 때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왔다. 지금은 퇴근 후에는 어느 정도 상담일과 생활을 분리할 수 있다고 느껴지지만, 상담가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 지라 이번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이럴 때면 무엇이 내 마음을 건드리게 되었는지, 다른 많은 주제들이 아니라 왜 꼭 그 주제가 떠오르는지를 살펴본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내담자의 이야기는 마음속에 조금 더 오래 자리 잡는다. 필요하다면 교육 분석 시간에 그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나의 문제가 내담자를 어지럽게 만들면 안 되니까. 


 이렇게 쓰고 나니 이 일이 참 고되다는 생각도 든다. 50분 동안 온전히 집중하다보면 정말 진이 빠지기도 한다. 나에게는 하루 5명의 심리상담이 최대다. 그 이상의 상담을 진행하면 받아들일 힘도 없고 집중도 안 된다. 일반 회사원들은 하루에 8시간씩은 일을 하는데, 그것과 비교하면 너무 적게 일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겠지만, 예전에 병원에 출근을 해서 심리평가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쓰면서 8시간을 보냈던 것보다 5명의 심리상담을 하는 일에 에너지가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건지 핵심을 파악하고, 또 그 전 회기에서 다루었던 얘기들과 연결시켜 생각하고,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가설을 세우고 해석해주려면, 또 거기에 기본적으로 공감적인 태도로 반응하려면 50분 동안은 딴 생각을 할 틈이 없다. 


 그렇기에 상담자는 자기돌봄이 중요하다. 수면과 식사를 적당히 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면서 신체와 정신의 컨디션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오전 상담이 있는 전날이면 술도 안 마시려 한다. 숙취는 없어도 평소보다 머리가 안 돌아간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상담이 끝난 뒤 저녁시간에는 좀 더 마음을 이완시킬 수 있는 활동들을 한다. 산책을 하고, 편한 자세로 앉아 독서를 하는 것이 그것이다. 마음에 무언가가 남는 날에는 좀 더 열심히 이런 이완된 활동들을 한다. 그래야 내 마음을 잘 지켜내어, 다음 날 상담을 할 수가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앤디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조금 흘렸는데, 반려견 꼬미가 다가와 눈물을 핥아주었다. 앤디는 떠나갔지만 꼬미가 찾아왔다. 인생은 그렇다. 슬플 때는 슬픔만 느껴지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행복이 온다. 꼬미가 아프면 꼭 병원에 데리고 갈 거라고, 떠나보낸 다음 어떠한 후회가 없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해본다.             



             

* 이 장의 제목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따왔다. 이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책인 것이 확실하고, 책 제목도 다시 확인했으니 이십 몇 년이 지난 뒤에 잘못 이름을 붙여 당혹해할 확률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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