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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Feb 22. 2022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어느 날 샤워를 하는 도중 내가 50대가 되면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 꼬미가 곁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다. 안타깝게도, 그리고 슬프게도 반려견의 생은 인간보다 한참이나 짧다. 50대가 되면 꼬미도 없을 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도 이 세상에 계시지 않겠구나 싶었다. 죽음이 코앞에 있다고 느꼈을 때 죽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이 슬퍼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 그 소중한 사람들과 내 반려견이 없다니, 그럼 삶의 이유가 사라지는 것일 텐데. 나도 그때까지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라는 질문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하거나 행복할 때는 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울해지고 삶이 힘들 때는 내가 뭣 하러 이 고생을 하면서 이 생을 살아야 하나, 어차피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의 은어)인데 하는 생각이 보글보글 올라온다. 내 마음이 괜찮을 때, 무엇 때문에 사는가를 떠올린다면 좀 더 긍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를 텐데, 그럴 땐 왜 사는지를 생각하지 않다가 우울할 때는 부정적인 사고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삶의 이유를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다가 나처럼 어느 나이까지만 살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서른 살 죽기로 결심하다 뭐 그런 책 제목도 있지 않았나? 어쨌든.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해서. 우울해지기 전 나는 무얼 위해 살았을까. 어렸을 땐 태어났으니까 살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지금 하고 있는 이 일, 임상심리학자가 되고 싶어 살았다.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후 죽음에 대한 책을 읽으며 지금 생이 끝나면 어떨까를 생각해보았을 땐 아쉬운 마음이었다. 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고, 책도 쓰고 싶고, 아직 안 가본 나라도 너무 많아서 다 가보고 싶은데 죽기는 아쉬웠다. 특정 직업을 갖는 것, 여행을 떠나는 것, 가정을 꾸리는 것, 작가가 되는 것, 이 모든 이유들은 각기 다른 것 같지만, 하나의 공통분모로 묶을 수 있다. 바로 행복.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살면서 행복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불의의 사고를 겪기도 하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시험에 떨어지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기도 하면서 힘든 시기를 겪는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그 힘든 시기를 겪어내고 나면 언젠간 또 좋은 순간이 온다는 거다. 겨울이 끝날 무렵 따뜻한 봄의 햇살이 비춰올 때, 푸르고 광활한 바다를 볼 때,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롭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을 때, 그것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런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게 정말이지 감사하고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 마음이 달뜨고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싶어 지고, 믿지 않는 신들을 찾으며 감사의 인사를 하게 된다.      


    우울감이 심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만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지난 글에서 얘기했다. 하지만 오늘은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게 무슨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는 건가 싶은데, 이때 말하고자 하는 ‘무언가’는 나의 상태와 속도에 맞는 무엇이다. 우울감에 빠져 바깥에 나가기 힘든 사람에게 산책하라고 등을 떠미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커튼이라도 걷고 햇볕을 쬐라는 얘기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행복이 그냥 찾아오는 경우는 적다. 햇볕을 쬐고 바깥공기를 맡으려면 몸을 일으켜 산책길에 나서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기라도 해야 한다. 좋아하는 음악도 찾아야 틀어야 하고, 귀찮음을 이기고 집 앞 카페라도 가서 앉아 있고, 친구와 약속 잡고 만나야 이게 행복이구나 느끼는 순간이 온다. 내가 무엇을 할 때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지, 행복해지는지를 아는 방법은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 즐거운지, 행복한지, 귀찮은지, 피곤한지 모니터링하는 거다. 그러고 보면 행복한 삶이라는 건 행복한 시간을 늘리고자 하는 노력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지는 것 같다. 


    위에 서술한 예시들 보다 더욱 큰 노력을 요하는 행복도 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선 지난한 과정을 성실하게 인내해야 한다. 사랑하는 자녀를 키우기 위해 상사의 눈치를 봐가면서 경제 활동을 해야 하고, 자녀가 다치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을 저야 한다. 이렇게 써보니 행복에는 요행이 통하지 않나 보다.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더 많더라도 그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행복의 요소들 덕분에 힘듦은 쉬이 상쇄된다. 하루 일과가 고단했더라도 저녁때 가족들과 모여 앉아 식사하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나면, 그래도 오늘 하루 잘 살았구나 느끼는 것처럼. 행복을 느끼는 상대적인 시간이 짧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허무해지기도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인간이란 존재가 그런 걸.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짧지만, 그 짧은 순간들이 지나고 그 긍정적인 감정들은 잔향으로 남아 사람을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마치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마음속에 남아 동력이 된다. 


    행복 중에 가장 으뜸인 행복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느낀다. 그 대상은 연인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이웃이 될 수도 있다. 함께 연대하고 정서적인 연결감을 느낄 때 우리는 참 뜨끈해진다. 나도 그러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과 연대하면서 연결감을 느끼고 싶어서.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아는 사람들, 자신만의 행복 목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은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오늘부터 나만의 행복 목록을 찾아보자.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지 모르겠다면 하나씩 시도해보자. 한 번의 시도로는 부족할 수 있다. 평소의 상태라면 좋아했을 활동인데, 그날 내 몸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함께 하는 사람의 컨디션이 안 좋아서 신경이 쓰였다거나 하는 상황적 요인으로 안 좋게 느껴졌을 수 있으니까. 행복을 위해 노력하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나를 위해 좋은 시간을 만들어주자. 어떤 것을 해봐야 할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면 아래 목록에서 찾아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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