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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May 29. 2019

'진짜 나'를 찾는 방법

난 겁이 없는 사람인지 알았다. 


청소년기부터 새로운 일에 쉽게 뛰어들기도 했고, 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학교나 사회에서 만든 규칙과 규범에서 약간은 어긋난 행동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변 어른들은 '넌 정말 겁대가리가 없구나'라는 말을 했다. 



좀 더 커서 대학생이 된 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편도 항공권과 5일의 백패커스 숙소만 예약한 채 호주로 떠났다. 호주에 머물려고 예상했던 기간은 3~6개월가량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영어도 못하는데 어학원을 미리 등록한 것도 아니었고, 일자리를 미리 구한 것도 아니었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단 가서 부딪혀 봐야지라는 생각에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났던 거다. 이때도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준비 없이 가면 넌 안 무서워?', '5일 지나서 일자리나 지낼 곳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라고 물으며, 정말 겁이 없다고 했다. 난 그저 다른 문화를 접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그때 내 상황에선 워홀이 최선이었으며, 한국에서 준비할 수 있는 건 정말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떠났을 뿐이었다. 내가 그때 두려움을 느끼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주변 사람들이 '넌 정말 겁이 없어'라고 단정 지었다. 그래서 20대 초반의 난, 내가 겁이 없는 줄 알았다. 



이후에도 '겁이 없다'라는 피드백은 항상 날 따라다녔다. 스카이다이빙을 했을 때에도, 전공을 바꾸어 심리학을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에도... 


그래서 난 겁이 없구나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신기했던 건 MMPI 검사를 하면 항상 내용소척도인 특정 공포(FRS2) 척도가 높게 나왔다. (내용 척도인 FRS 척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큰 해석적 의미는 없었다.) MMPI 검사를 항상 학부&대학원 수업의 일환으로 실시했기에 그 당시 높은 특정 공포 척도의 점수가 어떤 의미인지는 알지 못했다. 처음엔 우연히 이런 결과가 나왔나 생각했었고, 그 이후에도 반복되니 그저 의아하게만 생각했다. MMPI 검사의 타당도를 의심했던 적도 있었다... 겁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끔 행동했던 나의 모습과 왜 MMPI 결과가 다를까 싶었다.





하지만 심리학 공부를 계속했기 때문인지, 심리 상담을 받고 내 내면을 돌아보는 경험들을 했기 때문인지 이제야 이 불일치에 대해 이해가 된다.



사실 난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운동장 스탠드가 꽤나 높았는데, 맨 위에 올라서서 있으면 다리가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서워서 맨 위에는 서 있지 못했다. 대학생 시절 호주에서 지냈던 3개월 동안 밤에 잠을 잘 때 한 번도 깨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또한 같은 시기 동안 비교적 규칙적이었던 생리도 중단되었었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헬기를 타고 올라갔어도 후회를 했고, 같이 뛰는 교관이 아니었으면 뛰지 못하였을 수도 있겠다. 단지 난 새로운 일을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고, 위험한 상황을 즐기진 않지만 그렇다고 회피하지는 않는 성격이기에 남들이 보기엔 '겁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던 것뿐이다.



지금도 난 안전장비가 있는 놀이기구는 즐기지만, 해안가 높은 바위 위라든지 돌담과 같은 높은 곳을 올라가거나 걷는 경우엔 무섭다. 늦은 밤 아무도 없는 골목을 걸어가는 것도 무섭다. 쥐라든가 바퀴벌레 같은 생명체가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무서워 소리를 지른다. 



심리치료 책에서 공부했던 내용인데, 불안을 느낀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던 것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역설적으로 불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인 불확실성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두려운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신체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고, 어떤 것을 두려워하는지 인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불안이 감소한단다. 



내가 겁이 많다는 사실을 앞으로도 모르고 지냈다면, 두려워지는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과 신체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모호한 불안으로 지속되었을 수도 있겠다. 



이젠 내가 겁이 많다는 것을 알았으니, 두려워하는 것들과 이런 나에 대해 인정하고 수용하기로 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도 '그래 나 이런 상황에선 겁이 나.', '그래도 뭐, 여기 못 올라간다고 큰일이 나는 건 아니잖아?'라고 말할 수 있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내가 아닌, '실제 나'를 이해하고 수용하고 나니 조금 더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법을 찾은 듯하다. 더불어 남들이 기대하는 나(용기 있는 나)와 실제 나(겁이 많은 나) 사이의 차이를 무의식적으로 메꾸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의식하지는 못하더라도 남들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데 쓰이던 심리적 에너지가 줄어드니, 다른 유용한 곳에 그 에너지를 사용할 수도 있을 테다. 



이렇게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진짜 내 마음'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서, 그리고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제대론 된 심리평가와 그에 따른 해석상담이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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