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용서를 할 수 있을지도...
나는 감정이 없었으면 했다. 왜 신은 감정이란 걸 만들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할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슬픔이 있기 때문에 기쁨도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하지만 난 그 슬픔과 괴로움이 너무 커서 기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두 딸을 낳고 키우며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은 많이 사라졌다.
중고등학교 시절 너무 힘들어서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왜 태어났으며, 이렇게 힘든데 살 이유가 있을까, 하루에도 열두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학폭을 심하게 당했었냐고? 전혀 아니다. 학교에 다닐 땐 학폭을 당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주변에 당하는 것도 보질 못했다. 오히려 나는 친구들 뿐 아니라 선후배들하고도 친했고, 선생님들하고도 너무 친했을 정도로 학교생활은 너무 즐거웠다. 물론 학교생활에서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건 그저 지금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사람들과의 감정싸움이나, 사람들 간의 의견 차이, 생각차이로 맞지 않음의 정도였다. 그리고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딱 그 정도였다. 그땐 물론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이 힘들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즐거운 기억이 가득이다.
그럼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냐 묻는다면 1초의 고민도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가족이었고, 친척들이었다. 즉, 핏줄로 엮여있던 사람들이 나를 살고 싶지 않게 했다. 솔직히 지금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옥이고, 괴로움이다. 그만큼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지금도 힘들게 한다.
나의 아빠는 술을 굉장히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그냥 술만 좋아하는 애주가였으면 좋았으련만, 술만 먹으면 망나니가 되곤 했다. 그래서 엄마도 집을 나갔다. 그래도 나에겐 나를 사랑해 주는 아빠였고, 나를 위해 뭐든 하려고 해 주던 아빠였다.
그렇다고 아빠가 좋진 않았다.
아빠가 나에게 기둥이 되어주고 지붕이 되어주었으면, 내가 감정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거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었을 텐데 나의 아빠는 그러질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친척들은 나에게 막 말과 행동들을 거리낌 없이 했다. 그들에게도 우리 아빠는 망나니 오빠, 동생이었으니까... 그리고 난 그의 딸이었으니까...
그래도 조카라고 챙기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방학 때마다 고모네집에 가서 학원을 다니곤 했다. 공부하는데 도움은 됐던 거 같다. 하지만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다치는 순간들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할머니와 서울에 올라왔고 막내 고모가 우릴 데리러 와서 함께 지하철을 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애 꼴이 이게 뭐냐고, 껌 파는 애냐면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할머니에게 뭐라고 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는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나에게 껌하나 쥐어주면 딱이겠다고, 내가 듣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어댔다. 그리고는 함께 올라온 나와 2살 차이의 사촌언니는 자기들보다 어린데도 어찌나 떠받드는지... 공주님이 따로 없었다. (큰아버지가 돈을 잘 버셨고, 그때 대부분의 가족들은 큰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다. 사촌언니는 큰아버지의 딸이다.) 그날 나의 상처는 그걸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자고 있는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잠에서 깼는데 말소리가 들렸다.
"어디 무인도 같은 데다 갔다 버려야 해."
"삼천교육대 부활 안 하나?"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듣다 보니 아빠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그냥 쓰레기라는 거지. 갔다 버려야 한다는 대화의 내용이었다. 아빠가 망나니라고 해도 중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는지 속이 상했다. 나도 좋아하지 않는 아빠지만, 그래도 나에겐 아빠였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왈칵 났다. 하지만 참았다. 화장실도 너무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어떻게 바로 내 옆에서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건지, 아무리 자고 있다지만 이 사람들은 나를 사람으로 조차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아마 그때부터 난 입을 다물고 귀를 닫고 살았던 것 같다. 그전엔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었는데 그런 노력이 허무하게 그 순간 난 다 내려놓았다. 이후로도 내가 그들과 인연을 끊기 직전까지 나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그들의 만행은 계속되었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나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겐 그들이 나에게 했던 행동글과 말들이 전혀 나를 위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춘기였다. 그리고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집에서는 벙어리로 싹수없는 년으로, 삐뚤어진 청소년이였다. 하지만 학교에선 모범생으로 살았다. 내 인생은 살아야 했으니까...
내 휴대폰엔 아직도 그들의 전화번호가 저장이 되어있다. 마음은 이미 진작 지우고 인연을 끊었지만, 혹시나 연락이 올까 봐, 연락이 오면 거부하려고 저장을 해놓고 지우지 않았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건 SNS를 시작했을 때, 친구요청을 한다는 거... 왜? 도대체 왜? 그들은 나와의 관계가 좋았다 생각하고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걸까? 매일 생각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과 같은 이 피를 다 뽑아버리고 싶다고...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나를 생각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매일매일 나를 지옥 속에서 살게 했다. 정말 죽어서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우연인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정말 뜬금없이 전화가 온다. 큰고모라는 글씨에
"고모인데 왜 전화를 안받아?"
"너희 큰고모가 아니라 나의 큰고모야"
라고 얘기를 한 뒤, 왜 안 받는지에 대한 대답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감정이라는 것이 없으면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아니 감정이 없었으면 그렇게 상처조차 받지도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