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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Feb 08. 2023

오늘의 밤공기를 기억하려고.

불면의 밤을 지났으나 졸리지 않습니다.

요즘은 10시~10시 반쯤이면 한번 잠이 호되게 쏟아진다. 늘 12시가 넘어 던 내가 일을 다시 시작하니 그 시간이면 터리가 깜박이나 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조용한 새벽에 책을 보면 더 좋겠으나 나는 영 아침형 인간은 못 되어서, 아침에는 정신이 안 차려 지니, 차라리 집중이 잘되는 자기 전 시간으로 책 보는 시간을 정했다. 물론 글도 종종 그 시간에 쓴다.


이렇게 밤형 인간이다 보니 10시 반에는 시간이 아까워 도무지 푹 잠들어버릴 수가 없다. 30분도 안 되는 시간, 잠깐 눈을 감았다 뜨기도 하고, 그걸 참아내면 12시 즈음 푹 잘 잘 수 있다. 그 잠깐 눈을 붙인, 어제 같은 날이면 새벽 1시, 2시, 3시까지도 잠이 들지 못기도 한다.


밤 시간은 가장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거나 듣고 싶은 강의 등을 듣다가 자는 나의 힐링 타임이다. 빨리 잠들고 싶은 날이면 일부러 어려운 강의 등을 골라 틀어놓고 잠을 청하기도 한다. 어제는 책 읽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틀어놓고 잠을 청해보려다가 어찌나 동의가 되고 마음이 동하는 이야기였는지 잠이 홀라당 깨서 정신이 맑아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지막 시간을 본 것이 3시 몇 분이었나 보다.


이런 다음 날은 '이제 나는 죽었다.' 각오를 해야 했다. 심지어 오늘은 12시부터 6시까지 쉬는 시간이 1분도 없이 두시간씩 연속 3타임 수업을 해야 하는 날이다. 아이들과 토론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많은 논술 수업보다 상대적으로 내가 말해야 하는 양이 많은 한국사 강의가 2타임이다.


그런데 5시 반까지도 말짱했다. 끝날 시간이 다가오니 긴장이 조금 풀어지는지 두통이 살짝 오길래, 아이들과 함께 잠시 젤리를 나눠 먹으며 당을 보충했다. 그리고 다시 마지막 힘을 내 달렸다.


오늘 저녁, 남편고맙게도 늦는단다. 남편이 일찍 왔어도 오늘은 손수 지은 저녁 밥은 쿨하게 포기하려 했던 스케줄이었지만, 남편이 늦는다니 왠지 마음이 한결 편하다. 풋. 각자의 학원이 끝난 나의 세 아이들을 공부방으로 불러 모아 짜장면을 시켰다.

짜장, 짬뽕, 탕수육을 맛나게 먹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 기절만 하면 되는데, 또 나를 잡아끄는 일들 있다.


내 새끼들 학원가방이 너무 무거우면, 내 마음도 무겁다. 학원에서 뭘 하는지 가끔 궁금도 하지만 그래봐야 내가 한 달에 한 번도 책을 꺼내보는 일은 잘 없다. 놓고 다닐 수 있는 교재는 원에다 좀 놓고 다니면 좋겠다 생각한다.


나에게 오는 아이들은 읽을 책을 매주 적게는 한 권에서 3-4권씩 빌려 가는데, 아이들 가방에서 덜어줄 수 있는 건 좀 덜어 보관해주고 싶어 파일이랑 교재는 놓고 다니게 했다. 그 파일들이 쌓이고,  다음 주부터 와서 자기 파일 뒤져 찾지 않아도 되도록 잘 정돈되어 있어야 더 정돈된 마음으로 수업을 시작할 거 같다. 저걸 하고 가야 마음이 편할 거 같아 이름표를 만들어 출력해 붙였다. 저녁 먹고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앉아 책을 고르기도 하고 핸드폰을 보기도 하는 내 새끼들도 여유 있게 기다려준다.


주문한 지가 여러 날 전인데 제작 기간이 좀 걸려 오늘에야 도착한 포스트잇도 아이들과 함께 꺼내서 살펴본다.  1000개가 최소 수량이라 그렇게 주문했더니 진짜 많다. 별거 아니지만 내가 디자인하고 내가 만든 이 작은 결과물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이런거를 직접 나눠주는 홍보는 여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건강 상태도 고려해야하니 천천히 키워가면 되는데, 왠지 그것도 나를 깨 보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신학기에 한 번은 해볼까 마음먹고 주문한 거였다. 이런 일들 모두 흥미롭다.


공부방에서 집까지 7분이면 뛰어온다. 차를 안 가져갔더니 억지로라도 걸어야 해서 좋다.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며 아이들과 달리기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전에 돌려놓고 나간 빨래를 세탁기에서 건조기로 옮겨 돌리고, 식기 세척기에 오늘치 설거지를 다 몰아넣고 작동시킨다.


이제는 진짜, 어제 못 잔 잠까지 일찍 잠들면 되는데, 브런치를 켜들고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얼마 상담을 오셨던 어머니가 등록을 하시고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셨다.


"선생님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었어요. 만나 뵈니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선생님 아이 셋도 케어하셔야 할텐데, 정말 열정적이시네요~"


음.. 나의 어떤 얘기를 들으셨는지 나는 잘 모른다.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꼬치꼬치 물을 수도 없고 그냥 나 좋을 대로 생각한다. 열정적이라는 이야기겠지. 훗.


오늘 잠시 들리신 학모님들이

"나만 알고 싶은 선생님이지만, 번창하시길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라는 감동스러운 응원을 남겨주셨다.

 

이렇게 살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암으로 멈춰 선 그 길에 비로소 낸 용기로부터 다시 감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마흔부터 3년 동안 호되게 몸과 마음을 앓고, 마흔세 살에 비로소 탈피한 나로 다시 살게 되었다. 세상일에 다 좋기만 하거나 다 나쁘기만 한 일은 역시 없다.


긴 인생길에 또 마음이 흔들리는 날은 올 것이다. 그런 날들에 오늘의 개운한 밤공기를 기억하려 글을 쓴다.


잠을 많이 자서도, 돈을 많이 벌어서도, 비싼 음식을 먹어서도 아니고, 내가 보람을 느끼는 내 일을 뒤끝 없이 개운하게 해 낸 충만감에 유독 청량했던 오늘의 밤공기를 말이다. (알고 보니 미세 먼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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