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오프라인으로 만나며 돈독한 마음들도 함께 쌓아간다. 얼굴을 보는 건 고작해야 일 년에 몇 번이지만, 그녀들은 정말 누구 하나 게으른 사람도, 안주하는 사람도 없다. 모두 가진 에너지가 높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 모두.
<82년생 김지영>에서 지영이 엄마가 했던 대사처럼.
"나대. 막 나대. 얌전히 있지 마."
우리는 모두 막 나대는 그녀들이다. 풋.
그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내 방향이 맞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만남 뒤에 꽉 찬 만족감을 경험하게 되어 늘 감사하다.
윤* 님의 말씀처럼, 인생은 각자 또 같이.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고 독려하고, 또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또 열심히 살아내고, 그 삶 속에서 느낀 것들을 한 번씩 만나 또 공유한다.
이번 달에는 싯다르타를 읽었다.
싯다르타는편안하고 부유한 삶을 포기하고 길을 떠난다. 고타마를 만나 설법을 들었으나, 그의 친구 고빈다처럼 그의 제자로 남지 않고 다시 길을 떠난다. 지식은 얻을 수 있고 나눌 수 있지만, 지혜라는 것은 그렇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맞다고 믿는 길이지만, 내가 동의가 되지 않는 길을 어찌 그저 따라가겠는가. 나는 나의 길이, 그들은 또 그들의 길이 있는 거지.
싯다르타는 이토록 진리를 찾아, 나를 찾아 맹렬하게 헤매어도 보았고, 속세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아들을 두고 하는 걱정과 염려는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은 어리석으나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식 앞에 놓인 번뇌와 고통을 모두 면제시켜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그러나 자식을 위해 열 번을 죽어 준다 해도 그것으로 아이의 운명은 바꿀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 것들을 모두 안다고 해도, 싯다르타는 떠난 아들 뒤를 따르고, 한 번만이라도 아들을 보고 싶어 하며, 애를 태운다. 그 후로 오랫동안 아들을 떠나보낸 상처는 아물지 않았으며, 그 상처로 예전보다 덜 총명하고 덜 오만스러워진 대신에, 더 따뜻하고 더 호기심이 많고 더 많은 관심은 지닌 눈길로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싯다르타는 이 상처로 어린 싯다르타, 장년 싯다르타, 또 노년의 싯다르타의 모습을 본다. 운명을 거스르고 상처에 아파하는 자신의 모습을 강은 비웃는다. 강에게 묻고, 강에게서 대답을 듣는다.
오랜 고통과 번뇌 후에, 그의 상처에서는 비로소 꽃이 피어나고, 그의 고통이 빛을 발하고, 그의 자아가 그 단일성 앞으로 흘러들어 간다.
싯다르타는 깨닫는다.
이 세상과 자기 자신과 그 모든 존재, 그 어떤 돌멩이 하나까지도 모두 있는 그대로 소중하며,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결국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진리. 선*님은 이 대목에서 <토지>를 떠올리셨다 했다. 무려 토지 20권을 완독 하신 선*님. 나는 아직 13권에 머물러 있지만, 그 긴 대하소설의 마지막도 결국 사랑이라니.
어떤 특정 종교적인 책은 전혀 아니다. <데미안>과 결을 같이 하는 한 인간의 성장을 다루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