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_ 마음 자립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by 제이쌤
더 깊이, 더 집요하게, 더 집중해서 자신을 바라보기를 권합니다. 그곳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폐허를 만나겠지만 그 죽음의 장소에서 기대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씨앗이 자라는 것도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안정을 향해 가지만 결코 온전한 안정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내면 아이

: 개인의 정신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존재하는 아이의 모습.


갑상선암이라는 죽지는 않는 이 암이 걸리고, 강제로 멈춰 선 시간 안에서 나는 내 내면 아이를 바라보는, 힘겨운 일을 하고 있다.


내면의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지는 2,3년 되었지만, 미뤄두었다. 사는 게 바빴다. 그게 내 내면 아이의 소리인 줄도 몰랐다. 점점 더 소리가 커지는데도 외면했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아.. 올 것이 왔구나'라는 나의 느낌은 그동안 억누르고 외면했던 것의 폭발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삼아 쉬었다. 하루가 열흘같이 흘러갔다. 엉덩이 붙일 시간 없이 살다가 할 일이 순식간에 다 사라져 버렸으니 24시간이 참 길었다.


그렇게 고요한 시간 안에서 읽었던 책이었다.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

왠지 버리면 더 잘 살 수 있을 거 같던 남편인데, 제목 한번 가볍고 좋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벼운 책이 아니었다. 이혼하라는 얘기도 아니었다. 내면 아이를 만나라는 어렵고 힘든 책이었다.



내면 아이. 들어는 봤지만,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계속 내면 아이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책을 멈추고 힘들게 힘겹게 들여다본 내 내면 아이는 화가 나 있었다. 가끔 이유 없이 눈물이 났던 게, 가끔 나 같지 않은 행동으로 당황스러웠던 게 다 그 내면 아이였구나. 황폐한 나를 만날 거라 했는데 정말 그랬다. 내버려 두고 방치했던 나는 황폐한 들판 같았다.




이 책서 실제 박우란 작가님이 만난 많은 내담자들의 사례를 들어, 자식으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 관계 속에 얽매여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나를 제대로 보고 말한다.



#자식과의 관계


자식과의 관계에 있어 "그게 다 너 잘 되라고!!" ,

"네가 힘들게 살까 봐!"라는 수많은 부모님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아주 속물적인, 나를 위한 알리바이 일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이 얼마나 힘든데…”가 어른들이 하는 가장 흔한 레퍼토리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실은 힘든 세상에서 자식들이 발버둥 치며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기가 힘든 당신들을 보호하고자 함이 더 우선입니다. 정말로 자식을 사랑하는 일은 끝까지 어떤 선택을 하든 함께 견디어 주는 것입니다.

맞다. 나를 위한 일.

그걸 인정하기가 참 힘들었는데, 큰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며 알았다. 내가 원한 아이의 색깔과 아이가 가진 색깔은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라는 걸. 그래서 더 이상 아이들의 색깔을 예측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자식도 타인임을 인정하려 부단히 노력하 산다.



#부부 관계


자식들과의 관계보다도 나는 이 관계가 더 어렵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성인 남녀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고자 결혼이라는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분명한데, 정말 우리는 어른 두 사람이 결혼한 게 맞는 걸까? 저자는 남편 안에 있는 미숙한 소년을, 아내 안에 있는 미숙한 소녀를 서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에 대한 비난과 원망을 멈출 수가 없다고. 상대방을 미숙한 나를 돌보고 보호해 줄 성숙한 어른으로만 기대한다면 그 기대는 결코 충족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맞다.

우리는 둘 다 미숙한 채로 성숙한 어른을 서로에게 기대한다. 그래서 나를 돌봐주지 않는 서로에게 으르렁거리는 거다.




다행스럽게도 내면 아이는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한다. 흔히 심리치료에서 말하는 내면 아이가 바로 치유되지 못한 부정적인 내면 아이를 말하는 것이고, 치유되지 않은 채 안고 살아가면 그것이 어떠한 관계 속에서든 탈이 나기 마련인 듯하다. 그 내면 아이를 잘 들여다보고 치유하고 나면 그 아이가 내가 알지 못했던 놀라운 능력까지 발휘하도록 돕는 놀라운 아이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꼭 불우한 어린 시절이 아니더라도, 상처받은 내면 아이는 존재할 수 있다. 미숙한 어린 아이들은 많은 관계 속에서 알게 모르게 상처 입을 수 있다. 나는 그걸 인정할 수가 없어 내 내면 아이를 외면했던 거 같다.


그것을 인정하는 게 부유하지 않았으나, 두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내 부모님을 부정하고 원망하는 일인 것만 같았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k장녀인 나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키워주신 부모님께 내 내면 아이가 상처받아 울고 있다고 말하면 안 될 거 같았다.


종갓집 장손인 아버지에게 아들이 되어드리지 못했다는 그 분위기에, 어리광은 사치 같았던 나의 어린 시절. 집 안에서 본 남자는 엄한 아버지뿐이었기에, 그런 비슷한 분위기에 내가 취약하는 사실, 그래서 나를 혼내지 않는, 내 허술함을 모두 감싸 안아 줄 존재를 기대했었다는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인정했다고 해서 그때로 돌아가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인식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인식으로써 소멸되지 않는 운명은 없고, 멸시로써 극복되지 않는 운명은 없다.


알베르 까뮈의 이 어렵던 말이 이렇게 이해가 되었다.


다행이다. 그렇게 방치한 내 내면 아이가 이렇게라도 소리 내주어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몇 번을 멈추고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는 말은, 결혼식장에서 아버지 손에서 남편 손으로 넘겨준 내 인생을 찾으라는 얘기였다. 누구의 손에도 맡기지 말고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사실을 뼈 아프게 인지하라는 말이었다.


마음의 자립을 꿈꾸는 여자들에게 꼭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귀찮아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관계 속에 얽매이지 않고, 나의 삶을 살아낼 준비를 하는 오늘의 나를 칭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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