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_

브런치로 달라진 나의 글쓰기와 독서

by 제이쌤
사랑하는 딸, 너의 길을 가거라. 너의 스물은 엄마의 스물과 달라야 하겠지. 네 앞에 있는 많은 시간의 결들을 촘촘히 살아내라. 그리고 엄마의 사랑으로 금빛 열쇠를 줄게. 그것으로 세상을 열어라. 오직 너만의 세상을.


공지영 작가의 <즐거운 나의 집>의 일부이다.

5년 전쯤 이 책을 오디오북으로 듣고, 오디오북의 매력을 처음 알았다. 위녕..이라고 딸의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하는 그 조금은 철없어 보이는 엄마의 이야기에 나는 깊이 빠져들었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이동 중에 들으며, 운전하며 질질 짜면서, 엉엉 울면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에도 공지영 작가님의 문체가 좋아서 여러 권 찾아 읽었다. 나는 생각해보지도 못 한 어휘로 자신의 생각을 멋들어지게 표현한 그 작가의 통찰과 표현력이 너무 부웠다.

멋있는 남자가 쓴 글을 읽는 겨울밤은 빛깔 고운 파시미나를 등에 두른 밤처럼 얼마나 따스한지.

겨울밤에 늦도록 불 켜놓고 책을 보다가 잠깐 졸고 있는 나이 든 남자. 그때 노란 스탠드 불빛 아래 언뜻언뜻 한 그의 흰머리는 화려한 꽃다발 속에 섞인 보리 이삭처럼 싱그럽거든.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의 삶을 응원할 것이다>를 읽다가 필사했던 문장이다. 따스함과 싱그러움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가. 따스함을 겨울밤 등에 두른 빛깔 고운 파시미나로 표현하고, 중년 남자의 희끗한 흰머리를 꽃다발 속에 섞인 보리 이삭으로 표현하다니.




나는 독서와 글쓰기를 지도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보니 글을 잘 쓰는 일과 독서를 효과적으로 하는 일에 대해 늘 고민한다. 논술교사라고 모두 다 글쓰기를 즐기는 건 아니지만, 나는 내가 잘 읽고 잘 쓰고 싶고, 그 깨달아가는 방법들을 내 아이들은 물론, 많은 아이들에게 주고 싶어 이 길을 택한 사람이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만 식탁에 쌓여두고 한참을 빠져서 본 적이 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강원국의 글쓰기>, <고미숙의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글쓰기의 최전선> 등.. 그리고 <토지>를 반복해 읽다 보면 글쓰기가 놀랍도록 좋아질 거라는 말에 <토지>도 읽고 필사하기를 현재도 진행 중이다.


나의 글쓰기는 여기까지였다. 글을 쓰는 걸 즐기는 사람들은 누구나 책을 출간하고 싶은 꿈을 꾼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의 막연함이 구체적으로 바뀌는 경험을 한다.


공지영 님의 책 중에 <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라는 책에 '작가가 되고 싶으면 돈을 벌어야 해'라는 챕터가 있다.

이 챕터에서 저자는 글이 내게 올 때가 있다고, 그때까지 계속 쓰고 활자에 예민해 있어야 하고, 많은 글들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아야 하고,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통찰하며 머릿속에 그 데이터들을 장착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많은 글들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아야 한다는 말, 그 말을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알아차렸다는 거다. 나는 단어의 구성을 생각하고, 한 편의 글의 구성은 생각해봤지만 책 한 권의 구성, 내가 쓰고 싶고 쓸 수 있는 글들 간에 연관성이나 구성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거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이 것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며, 책들을 그런 시각으로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는 어떤 생각, 정보, 이야기들을 어떤 구성 방식으로 구성했는지. 나무 한그루 한그루만 보다가, 하늘에 올라 숲을 내려다본 경이로움이라고 표현하면 좀 과하려나.


그러면서 내가 가진 내 속의 이야기들과 지식들을 어떻게 엮을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 보게 된다.

내 안의 가진 것들을 분류해보고, 하나의 이야기로 머릿속으로 정리해보는 이 작업은 꼭 책을 출간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내 삶을 정돈해보게 된다. 나아갈 방향에 대해 흐릿하던 안갯속에서 손전등 하나쯤 장착하게 된 느낌이다. 브런치가 내게 준 선물이다.





공지영 작가의 말처럼 때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녀는 20대의 작가 지망생이 업을 다 내려놓고 글을 쓴다고 산으로 들어간다 하면 말리고 싶다 한다. 20대가 통찰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세상이라고. 돈을 버는 일을 하면서 쓰면 된다고. 그 말도 알 듯하다. 내가 늘 그랬다. 통찰하여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내 산 날이 아직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내 고통과 내면을 들여다볼 용기를 장착할 만큼은 나이를 먹어야, 그래서 나를 바로 볼 수 있어야 세상도 바로 볼 수 있는 거 아닐까.


지금이라고 세상을 통찰한다는 거만을 떠는 건 아니다. 새로 깨닫는 세상에 자주 놀라고, 그래서 매우 혼란스러운 터널을 지나느라 마음이 널뛰는 중년의 시작일 뿐이다. 급하게 머리털을 쥐어뜯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일을 하면서 나는 계속 쓸 것이다. 글쓰기와 아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 나의 일을 할 수 있어서 더없이 좋다.



요즘 독서를 하며 느끼고 있 것들을 다시 집어 들고 읽던 공지영 님의 에세이를 읽다가 명확히 알았다. 공지영 작가와 브런치가 내게 준 귀한 선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