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어머니와 평생을 함께 사신 우리 아빠, 그런 아빠와 결혼해 예순 중반이 되도록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우리 엄마, 나 역시 결혼 전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쉰다섯이셨던가. 짧은 삶을 살다가신 할아버지는 두 집 살림을 하신 분이셨다. 본 처인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보다 몇 살 연상이신 두 번째 부인 사이를 오가며 사셨다고 한다. 늘 외로우셨을 할머니의 봄 날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10년이 훌쩍 넘었던 예순 중반쯤에 찾아왔던 것 같다.
그때 대학생이었던 나는, 예순 넘은 할머니의 비밀스러운 로맨스를 이해할 수 없었던 거 같다. 부쩍 거울을 보시고 외출이 잦아지고 밝아 보이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그저 낯설기만 했었다. 그 나이에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새로 생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이해 불가였었다.
할머니의 로맨스는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결국 슬픈 결말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사랑에 나이가 없다는 걸, 평생 온전한 사랑이 없이 살아간 할머니의 삶이 외로웠을 것이라는 걸,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아마 죽을 때까지 인간의 삶에서 '사랑'은 떼려야 떨 수 없는 과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지 몇 해 되지 않았다.
이레 작가님의 <사랑에 대한 물음>은 사랑을 찾는 오십 대의 사랑이야기이다. 오십즈음이 되어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쓴 솔직한 마음들이 꼭꼭 눌러 담겨있다.
이 글들을 읽으며 어떤 사랑을 성공이라 말하고, 또 어떤 사랑을 실패라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이혼은 사랑의 실패인가, 이혼하지 않은 모든 부부는 그럼 사랑에 성공한 것일까.
내 지나간 '사랑'들도 돌아보게 되었다. 사는 동안 가장 많이 사랑한 사람과 살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노코멘트! 컥.
십 대, 이십 대의 사랑이 아닌, 우리 사십, 오십을 넘긴 사람들의 '사랑'은 '결혼'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지만, 이쯤 살다 보니 그게 꼭 제일, 죽도록 사랑한 사람과 결혼해서 사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만한 나이니까.
수많은 세상의 사람들 중에, 누군가를 만나 서로 사랑을 감정을 같이 느끼고, 일정 기간이든 평생이든 관계를 이어가는 일에는 그 '사랑'의 감정뿐만아니라, 그 사이 수많은 타이밍과 우연과 책임감 같은 것들이 더해져 이루어지는 환상(환장일지도;;) 같은 일일 것이다.
이 책도 물론이거니와, 브런치 필명 '사각사각' 작가님이신 이레 작가님의 솔직 담백한 브런치 글들을 통해서도 작가님의 이야기들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인생 제2막을 시작하기에, 새로운 사랑을 용기 있게 찾아 나서기에 딱 좋은 나이임을, 작가님의 글들을 보며 생각한다.
아직 오지 않은 나의 오십에도, 육십에도, 칠십에도 '사랑'은 여전히 다 알지 못할 신비롭고도 애절하고도 지겹고, 넌덜머리 나는..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애증의 단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