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보낸 시간이 길지도 않았고, 결코 특별한 관계도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꽤 먼 곳으로 이사가 결정되었는지 예고 없이 이별을 이야기했던 분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고, 나도 그 많은 이들중 하나일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둘 만의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특별할 것 없는 관계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 2,3번 정도의 이사로 많은 이별들을 겪었고, 학년이 바뀔 때마다 또 같은 층에서 매일 볼 거면서도 반 아이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 눈물짓는 아이들 같은 감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이별에 나는 눈물이 났었다. 그분은 모르겠지만, 혼자 마음으로 의지를 많이 했었던건지, 이별 통보(?)에 어느 날 오전, 가득 쌓인 빨래를 개며 알 수 없는 눈물을 줄줄 흘렸던 희한한 기억이 있다.
오늘 또 그런 눈물을 흘렸다. 알고 지낸 시간은 꽤 오래지만 역시나 자주 만나거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독 마음이 가는 분이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그분도 가끔 좋은 마음을 보여주었고, 아주 가끔 만나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번엔 더 멀리, 한국을 떠난다. 먼 타국으로 가서 언제 올지 기약도 없다.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내일모레 출국이라는 얘기를 듣고 또 그날 같은,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살다 보니 그런 인연들이 있다. 곁에서 자주 만나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과의 인연은 물론 소중하고 감사하다. 그런데 물리적인 거리도 있고 마음을 많이 주고받은 사이가 아닌데도 끌림이 있는 사람들이 생긴다.
마흔 해쯤 살면서 나에게도 색과 결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먼 거리에 있어도 나와 색과 결이 비슷한 사람이 눈에 띄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갖지 않은 색과 결을 가진 사람들에게 불나방처럼 끌리던 어린 시절을 지나고, 그런 관계들에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상처 입은 채로 맞이한 마흔 즈음. 그때쯤 내 눈에 들어온, 나와 비슷한 색을 가진 그들. 나는 사람에게 적극적이고 쉽게 다가가지 못하며, 내 마음이 불편을 끼치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이런 비슷한 색끼리의 사람들이 친해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느라 쉽게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인연이라도 맺게 된 그들이 모두 떠난다. 가까운 곳에 멀찍이라도 있기만 해도 괜히 마음이 든든했었다. 두 분 모두, 언제 다시 볼지 못 볼지 모르겠지만, 멀리 가서도 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이렇게 어디선가 그들을 좋아하고 아쉬워했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한번 웃어주면, 그걸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