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으로 책을 읽습니다.

책이 나를 살리고 있다.

by 제이쌤

10년이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아이들 독서교육을 한다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이 일을 20년을 한들 30년을 한들, 내 글이 내놓기에 부끄럽지 않은 날이 올까, 내가 훌륭한 독서가라 자부심을 느끼는 날이 올까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다. 늘 부족하다 느끼기에, 계속 배우고 발전하겠다는 내 스스로의 다짐쯤으로 해두자.


오랜 시간 내게 아이를 맡겨주시는 어머님과 차를 한잔 하면서 그 분이 말씀하셨다.


"저는 책을 안 좋아하고 잘 못 읽지만, 책이 중요한지는 너무 알겠어요. 지난번에 읽으신다고 얘기하셨던 <세이노의 가르침>, 저도 한번 펼쳤다가 바로 덮었네요. 너무 어려워서 진도가 안나가네요. 저는 그래도 소설은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지난번 추천해 주신 <유진과 유진> 정말 재미있었어요."


나도 실은, 학창시절부터 꾸준히 문학소녀는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믿지 않으시며 놀라시길래, 내가 언제부터 책에 빠졌는지, 어쩌다 이 일까지 하게 됐는지 이야기 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책에 빠진건 간절함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나는 삶에 대한 간절함이 없었다. 간절하게 잘하고 싶은 것도,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것도 없었다. 부유하게 자라지 않았지만, 내 상황들이 오히려 그럭저럭 살 수 있는 적당한 핑계거리들이 되어 주었던거 같다.


적당히 공부했고, 적당히 취직했고, 적당히 결혼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는데, 그때서야 간절한 것이 생겼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막연한 간절함이었다. 그래서 워킹맘으로 2년을 살면서도 두돌도 안 된 아이를 다리에 끼고 앉아 아기책을 읽어주며 교감했고, 그때부터 독서지도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기에, 그 간절함으로 그다지 간절하지 않던 회사도 그만두었다. 그리고 아이의 세돌부터 본격 나의 간절한 육아가 시작되었다. 그림책을 파기 시작했고, 그렇게 도서관과 서점을 마트처럼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아이와 함께 책을 읽었다. 그렇게 나는 모든게 빠릿하고 성향도 순한, 뽀얗고 예쁜 외동딸을 키우며, 책을 읽는 우아한 엄마로 4년쯤을 살았다. 육아는 엄마가 먼저 행복해야 하니, 자신의 행복을 챙겨야 한다는 오만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큰 딸 다섯살에 나는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하루 하루를 버티며 살아내야 하는 세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심지어 쌍둥이를 포함한 세 아이의 엄마가.

자신의 행복을 챙겨야 한다고 말하던 내 입을 때려주고 싶은 나날들이었다. 누가 모르냐 그걸. 몰라서 못하겠냐. 남편은 회사에서 업무 후에도 잦은 회식과 야근을 밥 먹듯이 했고, 친정 시댁 엄마 모두 한시간 이상 거리에 계셨기에 독박 육아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며칠전 막내인 아들이 어릴적 모습중에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는 말을 했다. 진짜 기억을 하는건지 어디서 주워 들은건지는 알수 없지만, 쌍둥이 4,5살쯤의 일인거 같다. 둘 다 떼를 썼는지 엉엉 울다 지쳐 침대에서 잠이 들었는데, 우느라 땀까지 흘린 딸의 땀을 닦아주면서 엄마도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더란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자기는 자고 있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 시기,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간절함은 내려 놓아지는 것이 아니라 세 배로 커져갔고, 현실과의 괴리감에 나는 매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미친년처럼 소리 소리를 질렀다, 사과했다를 반복하면서 길을 잃었었다. 그때, 나를 위로해주고 붙잡아준건 얼어죽을 남편도 아니었고, 바로 책이었다.


육아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대로 할 수도 없었지만, 그대로 따라하려고 읽은게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나쁜 엄마가 되려는 마음 공부였다. '이런 엄마의 잘못된 행동이 아이들에게 이런 영향을 미친다' 같은 글을 읽으며, 덜 잘못하면서 삼일쯤, 사일쯤 버틸 수 있었다. 약발이 떨어지면 또 읽고 또 버텼다. 그 간절함에 나는 책을 읽었다. 책이 내 유일한 돌파구였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좋은 책을 골라주었던 건, 부족한 나를 대신해 이 책들이 아이들을 바르게 잘 키워주었으면 하는 마음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내 새끼들뿐 아니라, 다른 집 아이들에게도 이 길을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길로 접어들게 된거 같다.


아이들이 모두 '학생'이 되고, 육체적으로 좀 나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된 때부터는 또 다른 문제들에 직면했다. 그동안 꽁꽁 철저히 감추고 살았던 '나'와의 문제였다. 그 고민의 시작은 모든 가까운 관계들과의 문제에 대한 고민들로 이어졌고, 그때 마침 고전독서 모임에 들어가면서 고전도 함꼐 읽기 시작했다.


간절히 나를 만나고 싶었다. 나를 알고 싶었다.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그간의 살아온 방식들이 있기에 앞으로 나아가거나 실천으로 옮기는 일들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그러던 중에 세상에, 내가 암이라니. 불행 중 다행을 이럴때 쓰는게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수술을 하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뿐 이 병으로 죽을 확률은 낮다는 갑상선암이었다.


내 분신 같던 큰 아이의 사춘기, 너무나 다르게 성장하게 가는 세 아이, 20년이 가까이 살면서도 죽도록 맞지 않는 남편, 나의 암.


다 세상 살아가는 일들이겠으나, 그 평범한 삶 속에서 나는 책을 읽으며 의미를 찾아가고 나만의 해답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고전들을 읽다 보면 비슷한 말들이 반복되고, 또 나는 비슷한 말들에 꽂힌다. 아마 그것 또한 나의 선택이겠지만, 매일이 선택인 삶 중에서 그래도 그나마 나은 선택을 하는데 큰 참고가 되는 것이 책이다.


그래서 나는 부족하지만, 이 일에 늘 감사한다. 이제는 강제로라도 책을 놓고 살 수는 없으니. 평생 책과 함께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책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듯이, 아이들의 그 길 옆에 손잡고 서 있어 주려 한다.


지금 나는 남의 나의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로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부모님의 그늘아래 살다가, 스물 여섯이란 어린 나이에 한 남자의 또 다른 그늘 안으로 내 삶을 옮겨 놓았었다. 그리고 많은 핑계들과 주변 탓을 하며 내 인생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살기를 회피했었다. 그걸 인정하고 마주하는 일부터가 너무 지난한 과정이었다. 그 긴 터널에서 다시 돌아갈까, 그만 가고 여기서 멈출까를 수없이 고민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아주 큰 마음을 먹었다. 너무 다른 유년기를 보낸 우리의 윗 세대도 나의 삶에 대한 어떠한 정답도 줄 수 없으며, 각자의 상황과 가치관이 다른 주변인들도 내게 정답을 줄 수 없다. 그 막막함과 두려움 속에서 나는 책의 손을 잡고 가려 한다. 아무것도 내게 강요하지 않고. 내가 놓아버리면 그걸로 끝인 그 지면을 놓지 않고, 나만의 해답을 찾아 나아가려 한다.


우산 없는 폭우 속.

그래도 괜찮다. 우산이 없으면 죽는 줄 알았는데, 비 좀 맞는다고 감기는 걸리겠지만, 죽지는 않는다.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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