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의자_숨겨진 나와 마주하기를..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면 머리가 맑아진다.

by 제이쌤

책을 읽고 나서 안갯속에 있던 감정이나 생각들이 또렷해짐을 경험하는 순간들이 있다. 소설을 읽거나 자기 계발서를 읽다가도 그런 순간들은 물론 있다. 최근 며칠 나는 온라인 독서모임에서 추천해 주신 <프로이트의 의자> 책에 빠져있다. 오디오북으로도 듣고, 페이퍼북으로 보면서 밑줄을 긋고, 그림도 그리고, 곱씹어 본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에는 문득 떠오른 어떤 한 구절에 아! 하고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현명한 사람들은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해 말합니다.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이고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외로움은 덜어내야 하는 감정이지만, 고독은 추구해야 할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외로움은 외로움을 낳습니다. 외로워하는 사람은 남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가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끌어당기는 에너지가 너무 강해서 사람들은 그의 곁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군중 속에서도 얼마든지 외로울 수 있습니다... 고독 상태로 들어가 내 안의 나와 정면으로 만나서 대화를 하세요. 나의 삶이 어디에 와 있는지, 내가 사는 이 유와 의미는 무엇인지, 삶의 기쁨은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고독은 인생의 속도를 약간 늦추는 일입니다. 우리는 고독을 통해 성장합니다.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는 그런 것이었다. 얼핏 구분 짓지 않아도 되는 비슷한 감정 같아 보이지만, 본질은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최근 몇 년 안에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키우고 있는 나의 아이들을 본다.


내가 그렇게 키운 걸까 싶도록 세 아이는 모두 '사람'에 대한 집착이 그다지 없다. 중3인 큰 아이는 사춘기라는 터널을 이미 지나며, 최근에는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들을 가끔 내게 털어놓는다. 주변에 늘 사람들이 많은 상황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상황 속에 오래 있다 보면 피곤을 느끼고, 사람들과 감정을 과하게 주고받는 일에 대한 의미를 잘 찾지 못하는 듯 보인다. '혼자'의 힘도 좀 생겨 보인다. 그러면서도 나처럼 '고독'과 '외로움'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가끔 나는 외로운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도 해보는 듯 싶다. 그러더니 사춘기 문턱쯤까지 온 쌍둥이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친구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 세 아이 모두 굳이 '단짝'을 만들려 하지 않고, 내 생활에 누군가 너무 깊이 들어오려고 하는 일을 오히려 조금 불편해하는 기색들도 보인다. 친구들 사이에서 즐겁게 살면서도, 안전한 자신들만의 거리들을 만들어 가고 있어 보인다.


나도 뒤돌아 보니 비슷했다. 친구가 없어 고민이었던 적은 없었다. 친하게 붙어 다니는 무리도 자주 있었고,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껏 가끔이지만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도 있고, 초, 중, 고, 대학, 직장 생활까지 모두 친구 관계가 힘든 적은 그다지 없었다. 그런데 내 인생의 단 한 명의 단짝 친구는 누가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누구라고 말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드니, 멈칫하게 된다. 지금도 나는 누구라도 평생은 단짝 친구가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는 대답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세상은 엄마 탯줄 끊어준 순간부터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내가 혹시 외로움을 극도로 타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됐던 사건도 있고, 감정들도 겪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들에 나는 분명 성장도 하고 있는데,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데 내가 혹시 어떤 방어기제로 고독으로 포장한 외로움 속에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있었다. 산책 길에 내놓은 큰 아이의 고민에도 나는 명쾌한 대답을 내놓아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발견한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를 보며 또 깊은 생각에 빠졌었다.


'혼자'여도 괜찮도록 자아의 힘을 키워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20년을 넘게 나를 낳아 키워준 부모님도, 20년 가까이 한 집에 살고 있는 남편도 24시간 붙어 있을 수도 없으며, 내 속을 다 알 수도 없다. 내 속을 훤히 들여다 보고 나를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 사람이 없다고 '외로워! 외로워!' 를 외치는 일은 장난감 사주지 않는다고 마트 바닥에 앉아 땡강을 피우는 어린아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딸이 농담처럼 '아 그냥 이 세상에 내가 한 명 더 있으면 좋겠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해서 가족 다 같이 웃었던 적이 있다. 그래, 세상에 내가 또 한 명 존재하지 않는 이상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맞춰주거나 24시간 붙어 내가 외롭지 않도록 돌봐주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동안 내가 원하는 '고독'과 혼자 있어 괴로운 '외로움'의 감정을 착각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에 머리가 맑아졌다. 제대로 '고독'할 줄 몰랐던 나는 그 고독으로 가는 길에 혼란을 경험한 것이구나 깨달았다. 목표가 명쾌해졌으니, 이제 어쩌면 외로움이라 착각했던 감정에서 벗어나 제대로 '고독'의 길에 다다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보인다. 아이들이 내 마음과 딱 맞는 친구가 왜 없는 거냐 투정을 내놓을 때도 나부터 명쾌해진 해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프로이트의 의자>가 출간된 지 10년이 되어, 올해 새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출간되고 있단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고독과 외로움의 주제 이외도 몇 편의 글은 더 쓸 수 있을 만큼 깨닫고 있는 내용들이 많다. 불안과 좌절과 망설임과 깊은 무의식 등 많은 주제들로 나는 나를 기꺼이 들여다보는 중이다. 처음 그것들을 마주할 때의 불안감은 어디에 비할 수가 없었다. 이런 지난한 과정들을 몇 차례 겪고 나니, 이제는 아니 여전히 두렵긴 하지만 그 과정뒤에 남는 이런 개운함의 즐거움을 알았기에 더는 미루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 정리하는 과정은 역시나 그냥 깨닫고 마는 것의 한 10배쯤의 효과는 있는 듯하다.


오늘도 손톱만큼 성장한 나를 칭찬하며.. 수업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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