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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Apr 13. 2023

딸이 남친과 헤어졌다.

꺄오! 감사해!!!

"엄마가 끌어줄게. 영차영차. 빨리 가자"

"내가 무슨 강아지야~~ 끌어주게~~~"


36개월이 안 된 아이와 조금 비탈진 길을 오르며, 저렇게 작은 아이가 저렇게 작은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저렇게 작은 발로 타박타박 걸으며, 저렇게 작은 입으로 저런 단어들을 내놓는 모습이 나는 그저 감동스러웠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내 새끼라니.


나의 첫 육아는 그렇게 행복했다. 믿기 힘들 만큼 눈 뜨는 모든 아침이 이 아이가 보여줄 새로운 모습들에 설렜다.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이런 사랑의 형태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했던 나날들이었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런 감정들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내 몸 하나도, 내 물건 하나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덜렁이 내가 이 아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세심히 챙길 수 있는지 놀라웠다.


대게는 좀 익숙해지고 수월해진 두 번째 육아이기에, 둘째에게 막내에게 이런 마음들을 느낀다고들 하는데, 나는 미안하게도 두 번째, 세 번째가 쌍둥이였기에 그때의 그런 감동의 순간들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너무 고됐기에, 너무 힘들었기에 세심함 따위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져 갔었다. 물론 큰 아이 때 형성된 (어쩌면 이미 내 어린 시절의 경험 등을 통해 형성되어 있었을지도) 나의 모성애와 육아 방식등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강제로 좀 내려놓고 키웠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그 힘든 와중에도 큰 아이에게는 큰 소리를 낸 적도 손에 꼽고, 꿀밤 한 번을 때린 적도 없는 것 같다. 이 아이는 나의 소울메이트라며, 남편에게도 하지 못한 의지를 이 아이에게 했던 거 같다. 부모 자식 간에도 궁합은 분명히 있다. 그런 걸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의 결이라는 건 있는 거니까. 큰 아이와 나는 잘 맞는 편이었다.


그런 큰 아이의 사춘기는 내게 청천벽력이었다. 인간은 고난 속에 성장하기에, 그 시기 나는 많이 아프고, 쑥 성장했다. 부모 자식 간의 거리에 대해, 저 아이들이 나를 떠나갈 거라는 사실에 대해, 아니 그렇게 잘 떠나도록 해주는 것이 나의 임무라는 사실에 대해, 그리고 그 후의 나를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아이의 첫 남자 친구 소식은 내게 또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이리 예쁜 내 딸인데 왜 좋다는 놈이 없냐 큰소리치던 남편도 그 소식에는 표정관리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부모의 큰 고난 중에 하나가 불안감을 견뎌내는 일이라는 사실을 통감했다. 알 거 다 알만한 중3을 앞둔 딸과 심지어 한 살 많은 오빠야라니.


입을 닫을까 봐, 최대한 쿨 한 척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우리는 여직 사이좋은 모녀라, 다는 아니더라도 나에게 많은 부분을 얘기해 주는 딸인데, 자칫 입을 닫아버릴까 두려웠다. 딸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시집을 간다는 것도 아닌데 이런 감정이라니. 나도 참 모지라다 생각했다.


놀이공원에 갔다가 11시가 다 되어 들어온 날도, 학원 끝난 늦은 시간에 집 앞에 마중을 나갔다가 남자 친구와 함께 있던 모습을 보고 슬쩍 숨어주었던 날도, 가족 외식에 빠지고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주말에도,  내 마음은 폭풍 속이었다. 그러나 딸을 믿어주자고 속으로 수만 번 되뇌었다.  


그리고 드디어 고대하던 딸은 첫 연애의 끝이 왔다. 그 소식을 듣던 날, 처음 사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처럼 차 안이었고, 나는 운전석, 딸은 뒷자리. 그 절망스럽던 내 표정과 매우 대조되었을 안도하는 내 표정, 모두 감출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풋.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한 번 경험한 것은 경험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문구가 있다. (그런데 한 번밖에 못 사는 우리네 삶이라니..) 그래, 흔하디 흔한 말처럼 많이 만나봐야 자기한테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겠지. 또 경험해 봐야지. 두 번째 세 번째 연애에는 나도 좀 더 쿨 한 엄마가 되어 딸 옆에 서 있을 수 있으려나. 조금은 놓아 키우는 내 둘째, 셋째의 연애에는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으려나. 아들의 연애는 또 다른 감정이려나.


무튼, 딸의 연애가 끝나서, 매우 홀가분하고 안심되고 해피하다. 진심.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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