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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Jun 12. 2023

운동장에서 빛난 너에게

오래오래 추억할게..


12살 된 아들은 꽤 운동신경을 가지고 태어났다. 초등학생이 되고부터는 하는 운동마다 잘했다. 처음 시킨 것이 축구였기에, 축구는 선수반 경력도 있다. 3학년 중반쯤 어렵게 선수반을 그만두기로 결정한 후로는, 운동 쪽에 약간의 탁월함이 보이는 정도로 이제 더 이상 아이의 미래까지 꿈꿔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커가는 모습을 보며, 운동선수라는 것이 운동신경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운동 신경과 센스가 있다는 것, 아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꽤나 축복받은 일임은 확실하다.



실력의 한계와 멘탈, 부모의 경제적 시간적 뒷받침 등 많은 이유들로 선수반을 그만두고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카타르 월드컵을 계기로 친구들끼리 또 불이 붙어 결국 다른 클럽을 찾아 취미반을 시작했다. 5학년이면 이제 하던 팀들도 깨질 판국이지만, 축구사랑 아들들의 성화에 다시 소소하게 팀을 꾸렸다. 두세 달 운동으로 하고 말길 바란 엄마들의 바람이 무색하게, 팀은 점점 커져가고 급기야 유니폼도 맞추고 대회까지 나가게 되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으면서도 아들들의 조름과 애원에 결국 일요일 저녁 40분~50분 거리까지 모두 엄마 아빠 동원하여 대회에 나가기에 이르렀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공부, 공부하는 아빠는 아니다. 공부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자고 진심으로 말하는 그런 사람인지라 아이들의 어떤 성과들에 크게 감동하거나 크게 노여워한 적은 없다. 그저 응원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아들의 운동에는 좀 다르다. 대회에 나가서 보면 이 아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빠들이 아들의 운동에는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 오른다. 풋. 본인이 들어가서 뛰라면 5분도 못 뛸 거면서 마음은 본인이 운동장 안에 들어가 뛰고 있는 거 같아 보인다.


선수반 때, 여러 번의 좌절과 함께 쌓은 몇 번의 대회 경험으로 아들은 자신만만이었다. 아빠랑 둘이 가는 길부터 신이 났다. 용의 꼬리였지만, 뱀의 머리정도는 자신 있다는 것 같아 속으로 웃음이 났지만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응원했다.


6:6 경기였기에 10명의 선수를 교체 투입하며  5번의 경기를 치르고, 결국 3위씩이나 했다. 아들은 5번 모두 1분도 쉬지 않고 뛰었다. 세 번째 경기 후반쯤부터 감독님께 좀 빼줬으면 하는 신호를 보내기도 했으나 빼지 않으셨다. 아들은 선수반 때도 최전방 공격수는 아니었다. 몇 번째 경기에선가 아들은 볼을 만들어 공격수에게 계속 정확하게 전달하고, 멋진 우리 팀의 스트라이커는 주는 족족 볼로 연결시켰다. 아들은 게임 전체를 잘 보고 있는 듯 보였고, 감독님도 아들에게 계속 이야기해 주라고 주문하셨다. 한 5,10분 정도씩 쉬고 계속 80분 이상을 뛴거다. 아이고야.


같이 응원해 주던 같은 소속팀 어른들도 "16번 멋지다!!"를 계속 외쳐 주셨단다. 나는 다른 각도에서 보느라 못 들었지만, 남편은 속으로 '제 아들이지 말입니다'를 외치고 있었다고 한다. 푸하하.


나도 마지막 경기에선가 몇 차례 큰 소리로 소리를 질러가며 응원한 덕에 목이 좀 무리가 되었다. 성과가 중요한 선수반 경기도 아니고, 즐겁자고 한 취미반의 귀여운 대회였다. 모두가 즐거웠다.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으면, 또 내 아들을 다른 각도에서 한 발 떨어져 바라보게 된다. 선수반 시설 좌절하는 모습도 수차례 봤고, 멋진 모습들도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5학년이 된 아들의 모습을 그렇게 바라보니 마음 한편이 뭉클했다. 언제 저렇게 컸나. 아들도, 남편도, 나도, 우리는 모두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 행복한 기억으로 만들어진 이 추억은 아마 영원히 기억 속에 남겠지.



찰나의 추억이, 녹록지 않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왠지 좀 알 것 같았다. 육아의 목표는 독립이다. 머지않은 언젠가 아들이 나를 잘 떠나가고 난 후에도, 오늘의 이 즐거운 기억은 남을 것이다. 아들이 자라며 이렇게 나에게 주었던 이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이면 그저 족하리라.


아들이 축구로 대회에서 뛰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는 어떤 한 아빠는 끝나고 나오시며 어떤 멘체스터 경기보다 오늘이 제일 재미있었다며 아들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아들이 뛰는 경기가 제일 재미있지요~" 하고 같이 웃었다.



자식이 주는 이런 기쁜 순간들.

내 몸을 빌어 세상에 나왔지만, 내 소유물은 결코 아닌 이 귀한 자식들. 그 아기가 걷고 뛰고 웃으며 자라는 그 순간들이 모두 선물이다.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덕분에 마음 다해 즐거웠던 오늘을 오래오래 기억하려 한다.







이때 만큼은 세상 진지함.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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