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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Oct 20. 2023

'이별'의 계절

인간관계가 늘 맺어짐과 끊어짐만 있는 것은 아님을..

어제는 가을비가 꽤 세차게 오래도 내리더니, 오늘 아침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이 오는 듯이 스산한 바람이 분다. 이 차가운 공기에  '이별'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는 듯이 이 찬 공기가 좀 아프고 쓰리다. 그 기억의 저 기 끝자리에는 육아를 위해 퇴사를 결정하고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 팀 저 팀 다니며 작별인사를 전하고 나섰 12월의 찬 공기가 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이던 4년 전 이 가을과 겨울 사이쯤에도 좋아하고 가까웠던 이들의 작별 소식을 접해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들 중에 다시 돌아온 이도 있고, 영영 떠나버린 이도 있다. 그리고 올해 이 가을 또 좋아하는 이들의 작별 소식이 들린다. 한 명은 필리핀으로 한 명은 러시아로 떠나게 되었고, 또 한 명은 갑작스럽게 이사가 결정되었다.


자주 만나 마음을 크게 나눈 사이들이 아니어도 사람에게 색깔이 있다면 나와 아주 비슷한 색깔이지 않을까 싶어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이도 있었고,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나를 어떻게 알아봤는지 먼저 다가와 마음을 열어준 이도 있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동네에서 가까이 지낸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사람도 있다.


떠난다는 이야기에 아쉬움을 전했더니 나를 만나면 그냥 안주하고 싶던 마음에 열정이 생겨서 참 좋았다고 떠나서도 계속 연락하며 지내자고도 하셨고, 떠나기로 결정하고 자주 나를 생각했다는 고백을 해주기도 했다. 이사 가는 곳으로 나도 같이 가자고 농담처럼 아쉬움을 표현해 주기도 했다.  아무 일이 없어도 그저 함께하면 마음이 좋았던 이들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어도 왠지 내 마음을 많이 열어 보여줄 수 있는 이들이었다.


나의 40대는 몰랐던 나를 알아가는 일들로 채워져 가는 중이며, 최근에 나에 대한 한 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편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나는,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내면에는 상처가 두려운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관계에서 받을 상처에 의연하지 못하기에, 방어 기제로 더 더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여우의 신포도처럼... 사람의 마음이란 게 애써서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가질 수 없으니 지레 포기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관계라는 건 맺거나 끊어짐, 둘 중 하나라 여겼기에 끊어짐이 두려웠던 건 아니었을까.


독서모임에서 토지 1권을 같이 읽어내고 있다. 나는 1권만 한 3,4번째 읽고 있고, 13권도 같이 읽고 있다. 토지의 인물들 중에 사는 내내 연결되지 않은 용이와 월선이의 관계는 자주 거론된다. 내 기준으로 한 번도 맺어져 보지 못한 그 둘의 사랑은 그저 부질없고 가련하고 미련스럽기만 했다. 어떤 한 분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그 둘의 사랑이 부럽다고도 했고, 또 어떤 분은 이루지 못했기에 가능했을지 모를 마음 같다고도 했다. (삶의 무게를 나누며 살아봤어야 환상 따위가 확 깨질 텐데 말이지... 하고)


몸이 멀리 떠난다고 해서 꼭 다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좀 소원해진다고 해도 그러다 다시 또 연락이 닿으면 마음을 나눌 수도 있는 것이고, 실제로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데도 나는 그 사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인간관계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찬, 가을 아침이었다. 오늘 아침 내가 먼저 보낸 안부 문자에 자주 내 생각을 하셨다는 지인의 말에 울컥했던 마음, 그런 게 '관계'인 건데 말이다. 자주 함께하지 못해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한 그런 찰나들.


사람들의 관계에도 물론 노력은 필요하지만, 만남과 헤어짐 따위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넷플릭스 드라마 <너의 시간 속으로>를 보다가도 생각했다. 만날 인연은 만나지고, 헤어질 인연은 헤어지는 게, 그게 세상의 이치임을 말하고 싶었나 보다 하고 말이다.



지금 이시절, 이 순간, 옆에 있는 고마운 이들.

헤어짐이 아쉽지만 인연과 조금의 노력이 더해지면 우리는 언젠가 또다시 만나게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하더라도 지금 이 시간을 지나던 중에 만나 나를 좋은 모습으로 떠올려 주고, 나도 떠오르면 흐뭇했던 사람들이 곁에 있었던 것에 감사할 것이다.


여전히 실수 투성이, 혼란으로 가득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삶을 배워가는 나의 풍성한 사십 대. 오십을 바라보는 몇 년 후의 가을날, 또 어떤 헤어짐들 앞에 서게 되면 그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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