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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Nov 04. 2023

너의 모든 처음은.. 나에게도 모두 처음이란다.

입학설명회에 아이 혼자 보냈다.

십 대의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큰 아이가 다음 달이면 고등학교 원서를 쓴다. 가고 싶어 하는 학교입학설명회가 있었다. 남편은 회식, 나는 수업이 있는 저녁 시간이었다. 아이는 혼자 갈 수 있다 했다. 문의할 것이 있어 학교에 전화했더니 참석자가 아이 혼자냐 다시 확인하셨을 때부터 싸한 느낌이긴 했다. 거의 다 부모님을 동반한다고 해도, 혼자 가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설명회 내용도 나보다는 아이가 알아야 하는 것이기에 혼자 보낼 생각이었다. 시간이 된다면 기꺼이 함께 가주겠지만 이런 상황이 된 걸 아이의 경험에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학교에 좀 일찍 도착했다며, 정말 나만 혼자인가 보다고 연락이 왔다. 마음이 쓰여 수업과 수업 사이에 잠시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차를 몰았다. 평소 13년 경력 운전자라 하기엔 너무나 초보 같은 운전을 하는 나지만, 마음이 이미 저기 학교 강당에 가 있기에 운전도 급했다. 가서 20분 함께 있어주고 다시 돌아와야 하지만, 그건 그냥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응원의 표시이고 사랑의 표현이었다.


조금 늦게 도착했더니 학교 동아리 중 사물놀이 동아리의 공연이 진행 중이었다. 가운데 꽹과리를 신명 나게도 치는 두 아이를 보며 눈시울이 주책맞게 붉어진 이유는 내 기억 딱 십여 년 전쯤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보다 작던 아이가 내키보다 훌쩍자라 고등학교 설명화라니. 벌써 이만큼 자랐구나.


7살 유치원 발표회 때 사물놀이를 했었다. 가운데 자리에 앉아 꽝과를 야무지게 치는 아이는 보면서 나는 그때도 뜨거워지는 눈을 부릅뜨고 아이를 바라봤었다.  팔뚝만하던게 언제 저렇게 컸나 하고.


큰 아이의 모든 일들은 나도 엄마로서 처음 겪는 일들이었기에, 모든 게 신기했고 감동이었다.

첫 옹알이, 첫걸음마, 돌잔치, 첫 친구, 첫 소풍, 초등학교 입학식, 첫 교복, 그리고 첫 고등학교 설명회.


아이의 사춘기를 지나며, 나의 혼란스러운 마흔 앓이를 겪으며 내 앞으로 육아의 목표는 아이의 건강한 독립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많은 선택을 아이에게 맡기도록 노력했다. 만에 하나라도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데도 아이들은 잘 살아내야 하기에, 그 일은 선의 문제가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수술방에 눕던 날도 생각했었다.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렇게 내 분신 같던 아이와의 거리를 힘겹게 벌려, 지금은 적당히 멀고 적당히 가깝게, 그렇게 자리 잡아 있다.

 

정말 모두가 부모님과 함께 온 듯한 강당에 아이만 혼자 두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기로 했으니, 다음 수업 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 운전해 수업 5분 전 딱 도착했다.


그리고 혼자 있을 아이 생각은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수업에 온 아이들에게 집중했다.


지난달 고전 읽기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어서 벌써 한 달이 다 지났냐며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지금, 여기, 내 삶에 집중하며 행복할 수 있어 감사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딸아이도 설명회를 마치고 돌아왔다. 엄마 아빠에 동생까지 데려온 집도 있고, 혼자인 사람은 자기밖에 없어서 자꾸 사람들이 쳐다보기도 했단다. 그런데 그 말에 서운함이나 서러움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 의연하게, 또 적극적으로 질문도 해가며 잘하고 온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이 묻어나는 것을 보고, 기뻤다.


나보다 키가 더 커지면서부터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일이 잘 없었던 거 같은데, 대단하다! 하며 머리도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사람들이 혼자 다니는 자기를 자꾸 쳐다봤다길래, 키도 크고 예뻐서 봤을 거라며 농담도 주고받았다. 모두 다 승용차로 귀가하는데 혼자 버스 타러 당당히 걸어 내려왔다길래 또 같이 웃었다.


동기부여를 잘 받고 온 아이는 이제 더 확고히 그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한다. 결과를 알 수는 없지만, 오늘 한 뼘 더 마음이 자란 것이 보인다. 지가 원하는 곳에 합격해서 간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것이고,  안된다고 해도 또 그 나름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렇게, 모든 처음을 함께하며 아이와 나는 자란다. 나는 혼자서 하나씩 배워가며 해내는 아이를 응원하고, 아이는 열심히 엄마의 삶을 살아가는 틈틈이 보여주는 엄마의 정성과 사랑을 눈치채 준다. 부족한 엄마라서 더는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 부족함은 아이가 채워갈 거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세 아이 하나씩 처리해 줘야 할 일들이 있었던 오늘,

매우 고단하고 바빴다. 집안 일도 어마어마했다. 9시까지 수업도 했다. 십 대의 시간만큼은 아니더라도 나의 시간도 그렇게 빠르게 지나간다. 거짓말 좀 보태 눈 한번 감았다 뜨면 오십이 되어있으려나. 그때의 내가 과거가 후회스럽지 않도록 오늘을 잘 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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