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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Apr 11. 2024

고등학생 딸과 함께 또 따로 견디는 하루하루

멋지게 견뎌내 보자!

선거날.

중간에 낀 휴일이라 큰 아이의 학교에서 기숙사 잔류는 선택이라 했다 한다.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를 2주 앞두고 걱정도 많고 예민하기도 하다. 이런 휴일에 기숙사에 남아 공부를 하면 좋으련만, 어쩔 거냐 물으니 고민 중이란다. 저녁에 집으로 오는 길이라 연락이 왔다. 본인 선택이니.. 저녁 수업을 마친 퇴근길 야식 사들고 기다렸다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지금 이 독서논술 교습소를 열기까지도 이 아이가 큰 역할을 했다. 책으로 아이를 키우겠다는 야심 찬 포부로 내 새끼들 책 육아부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이 아이가, 그것도 경쟁 더 치열한 특목고에 다니는 이 아이가 지금도 학원 하나 없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게 잘하는 짓인지, 걱정스럽지 않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중3까지 중간에 몇 달씩 수학학원도 다녀봤고, 한 6개월쯤은 영어학원도 다녔었다.  사춘기를 지나는 시기 한 2년은 책을 쳐다도 안 보기도 했었다. 렇게 완벽하지 않은, 나름의 책 육아는 흘러 흘러 그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무튼, 학원을 다닐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나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 선택의 문제로 넘어간 지 좀 되었기에 내가 잘하는 짓인지를 고민할 문제도 아니긴 하다. 다만, 강제로라도 '다녀야지!' 하고 강하게 말하지 않고 있는 게 나의 실수는 아닐까 하는 마음은 가끔 든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외국어를 배우는 걸 좋아하고 잘하는 편인 아이가 외고일반고를 한참 고민했었다. 내가 딱 정해주면 더 빠른 결정으로 준비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아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첫 선택은 아이 스스로에게 맡기고 싶었다. 긴 시간 고민 끝에 한 아이의 선택이었고, 운 좋게 결과도 좋았다.


그러나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역시나 예상했던 스트레스와 압박을 마주하고 있다. 누구 하나 열심히 하지 않는 아이가 없어 보이는 분위기에 본인의 위치를 아직 가늠해 볼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한 아이의 스트레스는 짐작이 가는 바이다. 한 번씩 그냥 일반고를 갔어야 했나 푸념처럼 늘어놓는 아이의 이야기에 이 아이의 마음이 지금 어떨지 알 것 같아 마음이 무겁지만 그냥 '그럴걸 그랬나'하고 가볍게 받아주는 척하고 만다.


나 또한 교습소를 야심 차게 열어놓고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수많은 압박감에 그냥 하던 대로 공부방이나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올라오고 있다.



아이가 학교를 고민하고 진로를 고민할 때, 내가 일을 벌이고 하나씩 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말했었다.

엄마를 보니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그렇게 시작을 하는데 뭐든 해보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든다 했었다.

그런 엄마가 지금 좀 질한 생각들이 든다고, 사실은 그냥 좀 덜 발전하더라도 편한 길을 택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을 했다. 내 그릇이 안 되는 걸 괜히 저지른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아이가 격하게 공감하며 본인 마음이 지금 그렇다고 한다. 해한다고 말해 주었다.


세상의 많은 일에는 발전을 위해 꼭 거쳐가야 하는 중간단계가 있다고 한다. 나도 어쩌면 지금 그 어디쯤을 지나가는 중인 것 같다고 했다. 어른이라고 많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잘 버텨나가는 건 아닌 거라는 걸, 솔직한 엄마 덕에 이미 알고 있는 딸이다.


"하.. 꼭 발전하며 살아야 할까. "하고 푸념을 한다.

엄마라면.. 정신 차리라고.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 아냐고 말해줬어야 했나 싶지만 나는 "그러게"라고 대답했다.



그런 서로의 푸념 끝에는

"그래도 엄마는 나아갈 거긴 해.

 아무런 시련도 고민도 없이 사는 삶 자체가

 판타지니까. 더 나은 날도 있겠지. 힘든 일들은 시간이

 또 해결하기도 하겠지. 너나 나나.. 누구나 자기의 일은 자기 자신밖에 해결할 수가 없잖니."


 " 나도 해야지. 어쩌겠어. 나만 버티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이들의 행복이 나의 꿈인 날들이 있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행복이 누군가 주고 싶다고 줄 수 있고, 받고 싶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고난을 견디고 헤쳐나가는 법을 알려주는게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답이 아닌 것 같다. 어떤 고난을 만날지 나라고 알겠는가. 그저 엄마가 마주한 고난들을 해결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수 밖에, 그 뒷모습을 보며 아이들 스스로의 방법을 찾을 용기와 지혜를 찾기를 바란다.


나 또한, 내 행복은 어디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 다른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오늘의 작은 고난 하나를 해결한 것으로, 고난인 하루를 잘 견딘 것으로 오늘치의 행복은 됐다 친다.



찌질한 오늘의 나도, 소중한 내 삶의 일부인 걸로.


매거진의 이전글 한 생명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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