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링 클링.
샴페인 잔이 부딪히면 정말 경쾌한 소리가 난다.
매년 열리는 파리의 책 박람회, 살롱 드 리브르 (Salon du Livre de Paris). 공식 일정 전날 저녁에 알렉산드라의 초대로 오프닝 전시에 다녀오게 됐다. 올해는 루마니아 문화원이 공식 행사에 초청을 받게 되어 그녀가 루마니아 문화원을 통해 얻어온 티켓으로 입장을 하게 됐는데, 전시장에 들어서자 클링 클링 경쾌한 소리가 작은 부스 큰 부스 할 거 없이 전시장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입장하고 한 시간도 채 되기 전에 대여섯 잔의 샴페인은 족히 마셨던 것 같다. 그리고, 이어지는 루마니안 전통공연을 감상하고 행사가 거의 파할 무렵, 출구로 나가는 길에 몇몇 부스에서는 예정에 없었을 댄스 타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음악 잡지를 주로 취급하는 출판사의 부스였는데, 디제이의 라이브 믹싱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춤을 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정말 축제 분위기였다. 그리고 여전히 주변에서 울려퍼지는 클링 클링 클링. 우리도 잠시 댄스에 동화되어 머물다가 (정확히는 춤을 추다가), 몇몇 사람들과도 대화를 트기 시작한 것이 한 두어 시간은 족히 지나서야 전시회 장을 빠져나갔다. 이렇게 샴페인은 사람들끼리도 클링 클링 하게 한다.
프랑스에는 EPWN(European Professional Women Network) 이란 이름으로 유럽에서 일하는 여성 모임이 잘 조직돼 있고, 활발한 교류과 행사가 있다. 이에 몇몇 엠비에이 친구들과 (물론 여자 친구들만) 가입하게 됐고,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킹 이벤트에도 참석했다. 하루는 디오르 꾸뚜르에서 프라이빗 패션쇼를 유펜 회원들을 대상으로 열었고, 우리는 모두 들떠 한껏 차려입고 파리의 몽타냐 에비뉴 (Avenue Montaigne)로 항했다. 디오르 본점 매장에서 진행됐던 패션쇼에서 우리를 맞이한 소리도 역시 이 경쾌한 클링 클링. 초소형 자쿠지를 감춰둔 듯 작은 기포들이 쉴 새 없이, 몽울 몽울 그 길쭉한 잔의 표면을 향해 거슬러 오르는 샴페인 잔을 지쳐보고 있으면 술을 못하는 사람들 조차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아도 이미 귀와 눈으로 한껏 취기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잔을 부딪힌 사람끼리도 클링 클링, 함께 나누는 기쁨과 즐거움이 배가 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샴페인인 것이다.
바르셀로나 하프 마라톤을 같이 뛰면서 알게 된 Helene의 할머니 댁에 초대받아 방문하게 됐다. 할아버지가 이 년 전쯤 세상을 뜨셨는데, 그 후 여전히 노부부의 집을 지키며 혼자 살고 계신 할머니께서 적적하실 까 봐 종종 식구들이 친구들과 함께 할머니 집을 찾는다고 한다. 여든을 훌쩍 넘긴 할머니는 본인의 집을 찾은 나이 어린 우리들에게 주인으로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직접 만드신 애피타이저들을 대접하고, 대여섯 명이 모이자 오늘을 위해 미리 칠링 해둔 샴페인 두 병을 꺼내 오셨고, 할머니께서 직접 샴페인을 터트리고 써빙을 해주셨다. 스무 살에서 여든 살까지의 사람들이 응접실에 모여 앉아 샴페인을 함께 마시고, 그 간 서로에게 일어난 일들을 나누고 축하하고 축복하는 모습이 괜스레 낯설게 느껴졌던 나는 조금은 슬픈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그래서 세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일상생활 속의 사소한 전통이 있다는 것이 어쩜 많이 부러웠던 것 같다. 물론 프랑스도 식생활이 많이 변하고 세대끼리 공유하기 힘든 그런 문화가 점차 늘어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길거리 노천카페에 뒤섞여 앉아 있는 남녀노소를 보고 느끼는 것처럼, 그리고 여든의 할머니와 샴페인을 나누는 것이 그저 자연스러운 것처럼, 이런 일상적인 것들을 서로 다른 세대들이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공유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참 많이 부러웠다.
언젠가 하루는 볕 좋은 토요일 낮, 유혹을 못 이기고 집에서 혼자 샴페인을 열었는데, 이 맛이 오죽 좋아야지 말이다. 결국 한 병을 혼자 다 비우고 마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는 내 인생 최악의 행오버를 경험했다. 역시 샴페인은 혼자 마시는 술이 아니었다. 눈과 귀, 코와 입을 통해 전해오는 오감의 쾌락으로도 부족해, 동반자가 있어야만 제 맛이 나는 술이다. 또, 어느 날에는 샴페인 지방의 에피냐이와 하임을 찾아 모엣 샹동과 포 메리 샴페인 카브를 투어하고 샴페인 제조 방법과 카브의 역사를 공부했다. 그 깊고 어두운 지하에서 오랜 세월에 거쳐 완성되는 샴페인은 어느덧 나에게 이제 좋은 일이 생길 때면 꼭 함께 하고 싶은 음료가 되었다.
내 졸업식을 앞두고 한국에서 파리까지 먼 걸음 해주신 부모님과 언니가 나의 낡은 옥탑방에 도착한 그날 밤, 나는 샴페인 지역의 하임을 직접 찾았을 때 사서 고이 모셔뒀던 포메리의 1990년 산 을 열었고, 우리의 환희는 버블리 샴페인의 기포 수에 클링 클링 잔 소리의 제곱 배만큼 불어났고, 더없이 행복했다. 고쟁이 차림의 아빠, 운동복 차림의 언니, 잠옷 차림의 엄마와 나는 그렇게 한 병의 샴페인을 다 비우고 깔깔깔 즐겁게 웃으며 함께 라면을 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