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육 개월의 엠비에이가 끝난 12월 23일,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시 몸을 녹인다고 전기장판을 켜고 누운 것이 2012년 새해가 밝을 때까지 약 이 주 동안 꼼짝없이 침대 신세를 지게 되었다. 수많은 수업과 과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과 크고 작은 파티들, 그리고 짬만 나면 프랑스 안팎으로 떠난 여행들 – 지난 16개월 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내 몸과 마음의 스위치를 내려버린 것 같았다.
게다가 약해진 내 면역력만큼이나 기운 없이 주룩주룩 내리는 겨울비로 스산한 파리의 작은 옥탑방에서 작은 난로 하나, 한국에서 챙겨 온 전기장판으로도 모자라 양말도 신고 목도리까지 칭칭 동여 감고 그렇게 침대 속에서 웅크리고 한참을 동면했다. 마치 지난 16개월 동안 한 숨도 안 잔 것처럼 그렇게 잠을 자댔다. 요란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에 맞춰 셀 수 없이 많은 샷을 들이켜면서 하얗게 밤을 지새운 파티에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이렇게 전후를 치르고 나니, 그렇게도 좋아했던 오래되고 울퉁불퉁한 파리의 골목길도, 언제 들어도 폭신하고 달콤하게 들려오던 프랑스어도 진절머리 나게 싫어져 버렸다. 달랑 책가방 만한 전기스토브 하나로 버티는 파리의 겨울은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듯 우울함의 극한 체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