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그림의 단어사전
간사하다 1 (奸邪하다) [형용사]
1.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나쁜 꾀를 부리는 등 마음이 바르지 않다.
2. 원칙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의 이익에 따라 변하는 성질이 있다.
간사하다 2 (奸詐하다) [형용사]
1. 나쁜 꾀가 있어 거짓으로 남의 비위를 맞추는 태도가 있다.
2. 지나치게 붙임성이 있고 아양을 떠는 면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해서' 자기 좋을 대로 하게 되어있다.'
요즘 제가 저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합리화를 하거든요. 화장실 청소를 할 때가 되었는데, '이사오느라 청소 솔을 아직 못 샀으니 청소를 못하겠네' 하면서 미루고, 운동도 해야 하는데 '너무 더워서 오히려 운동이 무리될 수 있으니까 참아야지'하면서 미룹니다. 사실 핑계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제가 제 유혹에 넘어가곤 하지요.
제 마음의 소리를 따라 오늘은 '간사하다'를 골라 보았습니다. 많이 사용하면서도 정확한 뜻을 찾아본 적이 없는데, 간사하다가 1,2의 두 가지 뜻이 있는 동음이의어라는 것도 오늘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뜻이 있다고 하더라도 표기하는 한자조차 다른 별개의 말이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먼저 간사하다 2를 살펴보면,
간사하다 2 (奸詐하다) [형용사]
1. 나쁜 꾀가 있어 거짓으로 남의 비위를 맞추는 태도가 있다.
2. 지나치게 붙임성이 있고 아양을 떠는 면이 있다.
이것도 일상에서 사용은 좀 되는 단어 같습니다. 당연히 악당에게 쓰이는 말이지만, 둘 다 악당 보스보다는 졸개(?)나 따르는 무리 정도에 쓰일 것 같은 이미지입니다... 정말 강한 자에게 비위를 맞추고 아양을 떠는 약하고 나쁜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르거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비위를 맞추는 것도 꼭 나쁘다고 말할 수 없고, 붙임성이 있고 아양을 떠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닌데, 왜 간사하다 2는 나쁜 단어일까요? 혹시 저만 부정적 단어로 해석하고 있나 의심해 봐도 이 단어를 긍정적으로 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 그런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답을 찾았습니다.
간사하다 2-1번과 2-2번 해석 모두 '나쁜 꾀(의도)', '지나치게'라는 부정적 용어 풀이로 시작한다는 것을요. 좋은 의도로 비위를 맞추어준다면 긍정적 해석도 가능하고, 혹은 선한 거짓말도 가능한 개념인데, '나쁜 꾀'를 내었다는 것은 의도가 불순하니 용납할 수 없나 봅니다. 우리는 결과를 중시하긴 하지만, 그 의도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게다가 '지나치게'라는 말 자체에서도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요. 옛 성현들이 말씀하신 '중용'을 어긴 것이니 좋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간사하다 2는 우리 모두 마음에서 밀어내야 할 단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 생각했던 문장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자기 좋을 대로 한다'에서의 '간사하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간사하다 2 정도까지의 나쁜 뜻은 아니었으므로 간사하다 1의 뜻으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간사하다 1을 보면 1-1번 정의와 1-2번 정의의 결도 좀 다릅니다. 1-1번 정의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나쁜 꾀를 부리는 등 마음이 바르지 않다.' 였는데요. 아무리 고민해 봐도 저는 간사하다 2와 결이 같아 보였습니다. 나쁜 꾀를 부리고 마음이 바르지 않은 것으로요. 그래서 왜 1-1과 1-2가 같이 묶여있는지 고민하다가 답을 찾았습니다.
간사하다 1 (奸邪하다) [형용사]
1.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나쁜 꾀를 부리는 등 마음이 바르지 않다.
2. 원칙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의 이익에 따라 변하는 성질이 있다.
위 풀이에서 답을 찾으셨나요? 제가 생각한 답은 '자기의 이익'입니다. 1-1과 1-2의 공통점은 '자기의 이익'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공익보다는 사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된 것입니다. 그리고 차이점은 '바르지 않다'는 것과 '변하는 성질이 있다'는 서술어 부분인데요, '바르지 않다'는 가치 판단인데 '변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은 말 자체의 느낌으로는 중립적으로 느껴집니다.
왜 1-2만 좀 중립적으로 느껴질까를 이해하기 위해 사전에 딸려있는 예문을 보며 그 이유를 좀 추론해 보았는데, 사전에는 간사하다 1의 2. 뜻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2가지 예문이 실려 있습니다.
사람 마음이 워낙 간사해서 저 편한 쪽으로만 따르게 되어 있다.
사람이란 결국 요렇게 간사하게 생겨 먹은 것인가 보다. ≪이호철, 소시민≫
두 예문의 공통점이 느껴지시나요?
'사람'. 사람의 속성이나 성품이 나쁘다를 이야기한다기보다는 결국 사람이란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좋지 못하다는 것은 알지만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어.라는 맥락이 느껴진다면 수용의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제 과한 해석일까요? 사람이기 때문에 원칙적이고 이상적이고 좋고 아름다운 것만 할 수 없다는 체념과 인정의 말로 읽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이익에 따라 변한다'라고 사람에 대해 변명하고 옹호해 주는 말 풀이를 쓰게 되시지 않을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봅니다.
결국 제 마음대로, 간사하다의 1-2 '원칙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이익에 따라 변하는 성질이 있다'는 나쁘지 않은 말로 정의해 봅니다. 무조건 한 가지를 고정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더 나아가 아까 1-1과 1-2의 공통점이었던 '자기의 이익'을 스스로 챙기는 것도 나름 건강한 삶의 방식이 아닌가 고민해 봅니다. 자기의 이익에 따라 변하는 것도 사람이고, 스스로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 아니라면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제가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는 것도, 운동을 잠시 미루는 것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저에게 이익이 되는 면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궤변을 펼쳐봅니다... 단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핑계 삼아 제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것. 이거야 말로 참 '간사한' 단어 풀이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단 오늘은 벌써 10시가 되었고 밤이 늦었으니 제 '간사함'을 충분히 누리렵니다. 오늘 하루 정도는 '(1-2번 뜻처럼) 간사하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궤변투성이의 오늘 글도 읽어주시고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