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그림의 단어사전
오늘의 글은 사실 단어 사전으로 쓸지, 그냥 조각글로 두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뭔가 정돈된 글로 쓰기에는 소화가 덜 된 단어인데, 그렇다고 조각 글로 놓아두기에는 좀 아쉬웠거든요. 그러다가 형식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단어 뜻 그대로 그냥 쓰이는 대로 '놓아지는' 글이어도 괜찮겠다 싶어 남기게 되었습니다.
'놓아지다'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입니다. 처음 쓰고 싶었던 단어는 '내려놓다'나 '놓아주다'였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가득 손에 쥐고 놓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동시에 무언가를 놓아준 느낌도 들었거든요. 그러면서 놓아준 것인지 놓친 것인지도 헷갈리는 모호한 느낌이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그 단어의 느낌을 글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계속 고민했는데, 고민하는 것조차도 놓아주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서 외면하기보다는 다소 두서없더라도 글로 풀어 주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놓다'라는 단어는 저에게 무게를 덜어내고, 집착하지 않고, 성숙한 사람의 이미지를 주는 단어입니다. 비슷한 단어로 놓치다'라는 단어가 있는데요. 저는 '놓다'에 비해서 '놓치다'가 '아쉬움'의 느낌을 좀 더 담고 있다고 느낍니다. 예문만 생각해도 '놓다'는 그냥 쥐고 있던 것을 느낌인데, '놓치다'는 의도와 다르게 놓게 되어서 아쉽다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놓치다'는 제가 요즘 느끼는 것과 거리가 좀 있고...
'놓다'라는 기본형에는 뭔가 능동적인 느낌이 있는데, 제가 놓아 보낸 것들인 사실 제 의지가 아니었던 게 참 많더라고요. 붙들고 싶었는데 놓쳐버린 것도 있고, 놓아줘야지라고 하면서 놓지 못하던 것이 시간 지나고 보니 사라졌다고 느낀 것도 있고, 놓으려고 한 적이 없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빠져나가 버린 것들도 있고... 제가 제 의지와 의식을 가지고 놓아주고 놓아 보내고 내려놓는 과정을 한 게 생각해 보면 많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아, 놓아지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놓친 것도. 놓아주는 것도. 놓아 보내는 것도 내려놓는 것도 아닌.
그리고 놓쳤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놓치고 나서 아쉬움을 금방 잊고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걸 보면, 그건 놓친 게 아니라 어쩌면 필요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욕심이었을 뿐 살아가는 데 필수는 아닌 것들. 나 혼자 꼭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 온 것들. 놓는 것은 결국 내 의지가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든 전문가 이상의 단계에 올라가려면 '힘을 빼야 한다'라는 조언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런데 힘을 내라는 것도, 힘을 주라는 것도 아닌 그 간단해 보이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지. 운동을 할 때, 치료를 받을 때, 크고 중요한 일을 맡았을 때, 차라리 힘을 주라면 주지 빼는 게 더 안 된다는 것. 모두 경험을 통해 알고 계실 거예요. 어떻게 힘을 빼나요?라고 물어보면, 그냥 힘을 빼야지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 조금 나은 조언이라면 심호흡을 하라는 정도일까요...?
열심히 하는 것, 노력하는 것은 처음 시작하는 초보나 신입이라도 가능합니다. 일단 움직이면 되고, 열정을 다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이니까. 그런데 힘을 빼고 과하지 않게 놓으라는 것. 무엇인지도 모르고 꽉 쥐고 있던 것들을 느슨하게 잡는 것, 필요한 것만 남기고 불필요한 것들을 놓아 소중한 것들을 담을 자리를 만드는 것. 모두 시간과 경험만이 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오늘 글을 쓰다 보니 이 글을 왜 쓰고 싶었는지도 알았습니다. '단어 사전' 시리즈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이고 제가 너무 많은 걸 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쓰고 싶은 단어는 한 가득인데, 잘 풀어낼 수 없는 단어들만 많으니 조급하고 답답해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놓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포기한다는 게 아니라, 긴장하고 너무 잘하려고 할수록 잘 안 될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그래서 희망하고 다짐해 봅니다. 오늘의 글처럼. 내 마음대로 내려놓는 것도, 놓아주는 것도, 놓아 보내는 것도 안 된다면. 천천히 '놓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시간의 힘을 믿고 묵묵히 가는 것. 그럼 저도 모르는 사이에 놓아져서 자유로워질 거라고 믿습니다.
힘겹게 쥐고 있는 짐이 조금은 놓아지는 평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ps. 단어 사전 시리즈의 글들은 제가 네이버 블로그에 꾸준히 써온 글과, 지금 새롭게 쓰는 글을 섞어서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써두었던 글들은 순차적으로 시간이 되는 대로 조금씩 다듬어서 올리고 새롭게 쓰는 글은 정기 연재 일정에 맞추어 올리려고 합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참고를 부탁드립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