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그림의 단어사전
내가 요즘 일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을 꼽으라면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다. 명확하지 않던 것이 탁 트이고 명확해지고, 나 스스로가 성장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 순간. 가장 뿌듯하고 행복한 순간이다. 이 순간은 책을 읽다 마주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TV를 보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알게 될 때도 있다. 어떤 순간이든 중요한 것은 '언어'의 형태로 온다는 것이다.
단어 사전 시리즈를 쓰는 것도 그렇지만 세상은 내가 정의하는 대로 보이고, 내가 정의할 수 있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 이것 역시 나를 글쓰기로 이끌어준 책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김종원 작가님)'를 통해 깨달은 것이다.
납득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상처받을 때 '깨달음'은 어쩌면 '좌절'과 동의어였다. 이해가 된다기보다는 안 된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게 되는 것에 가까웠기 때문에.
하지만 감정도, 상황도, 사람도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하고, '소화하다'라는 표현을 찾아내고 나서부터 이해되지 않는 세상이 조금 덜 힘들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그때부터 '깨달음'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깨달음 [명사]
생각하고 궁리하다 알게 되는 것.
깨달음의 사전적 정의이다. 생각하고 궁리하다 알게 되는 것. 생각하는 것도, 궁리하는 것도 모두 몸의 깨달음보다는 사고의 영역으로 한정지 어진 단어의 느낌이라는 것이 이제 이해가 된다. 좌절을 '체득'하는 것과 그것을 단어화하여 '깨달음'으로 바꾸는 것은 다르니까.
실행에 있어서도 머리로 생각하고 언어로 정의한 후 깨달음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체화한다는 과정을 단계별로 생각해 본다면 그게 맞기도 한 것 같다.
깨달음의 어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추론을 해보았는데, 일단 깨달음은 합성어(어근과 어근이 합쳐져 한 단어가 된 것, 두 단어가 합쳐진 것으로 이해해도 좋다)로 느껴진다. 그래서 '깨'와 '달음(닫다)'에 대해 나누어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추론은 '깨지다'와 '닳다'의 합성어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었다. 물론 깨달음의 원형은 '깨닫다'이지만, 아이들도 (혹은 어른도) 깨달음을 '깨닳음'이라고 잘못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쩌면 깨달음은 '깨지고', '닳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약간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면 깨지고 닳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게 깨달음 같기도 하다.
두 번째 추론은 '깨다'와 '닫다'인데, 깨는 것은 스스로 깨고 나오는 이미지를 생각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이 떠오른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하나의 세계를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하는 것이니 그 의미가 맞는 것 같았다.
남은 '닫다'에 대해 고민했는데, 닫다는 close의 의미가 아닌 'fast run'의 의미도 있다. '내닫다', '도움닫기' 등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묻다'가 '물음'이 되듯이 'ㄷ'불규칙 활용이 일어나기도 하니 딱 맞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깨고 나와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가는 능동적인 모양. '깨달음'에 딱 어울리지 않을까...?
이런 추론을 거쳐 인터넷 창에 질문을 해보니. 내가 틀렸다. 생각지 못했던 해설이 하나 더 있었다.
아. '깨다'와 '닿다'. 깨어서 '닿는다'였다.
그럼 또 궁금해진다. '무엇에' 닿았을까? 세상에? 세계에? 진리에?
문득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가 얼마나 좁은지 또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닿다'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깨지고 닳는 것도 아니고, 깨고 달려 나가는 것도 아니고, 작은 세상을 깨고 나와서 다음 세상에 '닿는' 것.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에서 나온 것도 대단하지만, 나오면 또 다른 넓은 세상에서 어디론가 또 나아가야 하듯이. 진리에 닿았다기보다는 다른 세상에 '닿다'가 더 맞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닿은 세상조차 또다시 깨고 나가야 할 다른 껍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니.
다만 확실한 것은 아까 데미안의 인용구처럼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깨지든 깨든. 무언가를 부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는 것. 상처와 고통 없이 성장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바뀌지 않는 진리가 아닐까 한다.
내가 쓰는 글 역시 무언가의 껍질을 계속 두드리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 껍질이 깨졌을 때 무엇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손이 아프고, 부리가 아파도 두드려본다. 무엇이라도 나올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