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그림의 단어사전
'나눔'이라는 단어는 왠지 '착한' 단어 같습니다. 선행과 봉사, 배려와 같은 긍정적 단어와 잘 어울리니까요. 인터넷에도 '나눔'을 검색하면 네이버에서 무료로 베포 해서 누구나 쓸 수 있도록 해준 '나눔 글꼴', 인터넷 중고 거래의 '무료 나눔'과 같은 키워드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 사전에서는 '나눔'이라는 단어가 '착함'이라는 단순한 말로 한정지 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눔'은 명사형이라 사전에 나오지 않고, '나누다'를 찾으면 사전적 정의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정의를 다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니까,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둘로 가르고 분류하는 '나누다'
(수학의 나눗셈, 케이크를 나누다, 청군과 백군을 나누다)
2. 몫을 분배하는 '나누다'
(돈을 공정하게 나누다)
3. 공유하는 '나누다'
(대화를 나누다, 슬픔을 나누다, 핏줄을 나누다, 술을 나누다)
우리가 생각하는 '착한' 나누다는 몇 번일까요? 일단 1번은 좀 거리가 있어 보이고.. 2번과 3번 사이의 그 어딘가 같은데, 2번도 3번도 명확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나눔과 같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사전을 찾았는데도 딱 맞는 느낌이 안 들까요? 저는 그 이유를 '무료 나눔'이라는 말에서 찾았습니다. 곰곰이 뜯어보면 '무료 나눔'은 이상한 말입니다. 무료가 아니라 유료로 나눔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나눔이 아니라 '판매'니까요. 큰돈이든 작은 돈이든 말이죠. 그러다 보니 깨달았습니다. 제 사전 속에 나눔의 핵심 의미 요소 중 하나가 '대가를 바라지 않는'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나눔을 착한 단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나눔은 정말로 착하기만 한 행위일까요? 극단적 사례일 수 있지만, 당근 마켓에서 나눔을 하거나 온도가 높은 것에 집착하는 가족 때문에 힘들다는 사례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손해를 볼 정도로 가격을 깎아주거나, 심지어 '무료 나눔'을 하기 때문에 경제적 손해를 본다는 사연이었지요. 그들은 왜 나눔을 하는 것일까? 그 나눔은 착한 나눔이라기보다는 '병든 나눔'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멀리서 극단적 예를 찾을 것 없이 저만 해도, 제가 나눔을 실천한다고 하면 뿌듯할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나눔을 할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대가가 없이 베풀며' 한다기에는 조금 이기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눔'을 실천했다는 뿌듯함이나 도덕적 우월감을 대가로 받고 있는 게 아닌가? '나눔'을 통해 돌려받게 될 무형의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아닌가? 나의 나눔에는 정말 대가가 없나? 하는 생각이 말이죠..
게다가 자신의 재산이나 에너지를 모두 털어서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만해도 일상에서 가능한 나눔은 나에게 '남는' 것을 나누는 것이니까요. 어쩌면 현실의 나눔은 어떤 것이든 넘치고 남는 경우에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너무 '나눔'의 이면에 대해서만 언급했나 싶지만... 그래도 저는 '나눔'이라는 단어를 사랑합니다. 왜냐면 나눔이 '선순환'의 구조를 가져온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뿌듯함을 느끼기 위해서든,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든, 남는 것을 나누는 것에 불과하든 간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나눈다면 '반드시' 그것이 '선(善)'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요.
제가 무언가를 준다고 그 상대방이 돌려주는 것도 아니고, 제가 나눈 그 무언가를 똑같이 돌려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나눈 것이 돌고 돌아서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저는 순간의 변덕일지라도 제 나눔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그 사람이 고마움에 누군가에게 변덕으로라도 나눔을 한다면, 서로가 나눔과 베풂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면 우리는 모두 나눔과 베풂의 세상에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게 꿈과 같은 이상이 아니라 '나눔'은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세와 이미지 제고를 위해 엄청난 기부금을 내고 재단을 설립하는 대기업이 있다 해도, 그들의 나눔이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세상에 나아가면, 그들의 의도가 불순했으니 나는 세상에 복수하겠다고 생각할까요? 아닐 것입니다. '나눔'의 속성 중에 '착함'과 '선(善)'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 선한 속성이 우리를 더 나아지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커다란 재단과 많은 기부가 아니라 일상에서 '나누는' 인사와 격려, 위로 같은 것들도 소소한 '나눔'에 속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무형의 기도도 일종의 '나눔'일 것입니다.
저는 이미 오늘 많은 분들께 나눔을 받았고, 또 무언가를 나누었습니다.
내일도 나누고 나눔 받아서 선순환을 만드는 하루가 되길 바라며 오늘 글을 마치겠습니다.
귀한 시간을 나누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