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 이두형
우울과 불안에 대해 이토록 명쾌하고 다정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작가는 우울과 불안을 나쁘게만 보고 배척하기보다, 우리와 함께 가야만 하는 감정임을 인식하고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우울이나 불안이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연예인이나 부자도 우리 못지않게, 혹은 더 우울하고 불안하다. 심지어 과도한 부유함이 정신적 결여를 가져온다는 질병 '부자병(어플루엔자)'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울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 책의 말과 같은 해석이 필요하다.
"우울은 비록 잘 되진 않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바랐고 바란다는 것."
"불안은 가치 있는 무언가를 위해 불확실성을 감내하고 있다는 것."
우리가 고통을 참을 수 있는 것을 그 고통의 의미가 있을 때뿐이다. 의미 없는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더 중요한 것은 이 메시지가 미래의 희망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자는 메시지도 아니라는 것이다. 책의 메시지와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이 일치해서 깜짝 놀랐다.
나는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시험을 5수 했다. 교사가 되었기에 그 고통이 의미 있고, 되지 못했다면 무의미했을까? 교사가 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교사가 되고 나서 훨씬 더 힘들었다.
그때 생각했다. '이 고통을 겪고 교사가 되었는데 왜 나는 더 고통스러운가? 도대체 이 불안 우울 고통은 어떻게 해야 사라지는가?' 그래서 심리상담을 받기도 하고, 살려고 책 읽기와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했다.
내 목표는 하나였다.
'불행하지 않기'
버릇처럼 하던 말 중 하나가 '행복하지 않아도 되니 불행하지 않고 싶다'였다. 너무 힘들다고 생각해서, 더 힘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으니 소박하다고 생각했지만, 말도 안 되는 욕심이었다. 부처님도 말씀하시길 인생은 원래 고통이니 말이다. '행복하고 싶다'가 오히려 실현 가능한 소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5수의 과정이 없었다면 나는 훨씬 미숙한 인간이었을 거고, 교사가 된 지금도 그 5수 과정을 되돌리고 싶거나 없애고 싶지 않다.
그리고, 설령 교사가 못 되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렵게 된 교사직을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게 가능한 이유가 바로 단어를 재정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울도 불안도 다 내 것이고 의미 있다는 것.
이것은 고통을 의미로 덮어서 정신승리하는 것도 아니고, 성공해서 그 고통을 보상받는다는 것도 아니다. 보통 우리는 바라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불안하지 않고 우울하지 않은 삶은 없다. 정신적으로도 불안이나 우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무감각함이다. 불안과 우울을 느낀다는 것은 무언가를 꿈꾸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니 무의미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노력하면 다 될 거라는 헛된 희망이나 응원의 말이 아니라, 내 노력의 결과인 불안과 우울을 받아들이고 안아주는 것. 그만큼 원했고 애썼구나 하고 인정해 주는 것. 이게 작가님이 말하는 불안, 우울과 함께 가는 방법 같다.
인용구가 있는 책의 표지에는 '수용전념 심리학'이라는 말이 적혀있다. 내 것으로 수용하고, 삶에 전념하는 것.
이 글 역시 나의 불안과 우울을 담는다. 내가 바라는 것을 더 명확히 찾고 내 삶을 의미 있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니까. 불안 우울을 벗어나는 법은 없다. 벗어난다 해도 새로운 불안과 우울이 또 옷을 갈아입고 내 옆에 서있을 것이다.
그를 바라본다. 쫓아내려고, 도망가려고만 하지 않고 손 잡아본다. 잡은 손으로 존재를 확인하고 나는 내 길을 묵묵히 걷는데 집중해 본다. 어차피 같이 가야 한다면 이리저리 날뛰는 녀석들을 걱정하고 쫓기보다는 손 꽉 붙잡고 길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