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1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삶은 오류의 연속이다. 당신이 의도한 일이 100% 의도대로 이루어질 확률은 0%이다. 그것은 당신이 매 순간 얼마나 진심이며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 지와는 관계없다. 우리의 인생에 관여하는 변수는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많고, 그 변수를 마음대로 통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운 좋게 모두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불가능하다. 불완전성과 그로 인한 고통은 결함이 아니라 삶의 본질이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 이두형 p.36.
나는 의미를 찾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진심으로 하고 노력한다면 내가 성장하고 덜 고통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내 노력으로 성장하며 극복해 온 부분들이 있기에 노력과 진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명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간절히 바라고 진심으로 원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을 항상 의심해 왔기 때문이다.
나름의 진심을 다했는데 실패했다면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건가?
세상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은 간절히 기도하거나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별로 간절해 보이지 않는 저 사람이 왜 간절해 보이는 사람보다 먼저 이루고 얻는가?
간절함의 기준이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간절히'는 참 애매하다. 얼마 큼이 '간절'한 것인가? 게다가 '너무 간절'하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까지도 듣다 보면 도대체 그놈의 간절함이 뭔가 싶다. 간절함의 개인차는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그리고 보이는 것과 실제 간절함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별개이기에, 간절히 바란다는 것은 어쩌면 이상에 불과한 말일지도 모른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나는 대학 가는 게 그렇게까지 간절하지는 않았다. 고3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친구들도 있는데, 과거 기억이 미화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다. 간절하게 노력했다기보다 나에게는 그냥 '루틴'이었기 때문이다. 밥 먹고 공부하는 것 자체가.
여기서 '간절함'의 애매함이 또 드러난다. 나의 '루틴'은 수업 시간에 졸지 않고 풀 집중, 수업 후 6시부터 10시까지 야자였다. 대학에 너무 가고 싶고 간절한 것은 솔직히 없었지만, 매일 순 공부시간을 10시간 이상이었다. '간절함'이 성취의 조건이라면 나는 대학에 가지도, 교사가 되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간절함' 만으로 공부 시간이 나보다 적은 친구들이 대학에 잘 갈 수 있었을까?
교사가 되기 위한 임용시험에서 나는 5수를 했다. 부모님과 언니까지 모두 교사였다는 나의 집안 환경은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특히 내가 임용 공부를 시작하던 그즈음. 재수를 해서 임용에 붙은 언니가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언니는 멀리 있는 학교에 발령 나는 바람에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밤 11시에 퇴근했다. 근무 시간과 강도를 떠나 쉽지 않은 아이들과의 적응에 매일 괴로워한 것은 덤이었다. 임용 공부를 하는 내내 '내가 원하는 이 길의 종착점이 저 모습인가?'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당연히 간절하지 않으니 공부도 안 했고, 대안학교 교사,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방황하던 시간 등을 거치는데 5년이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교사가 된 것도, 교사로서의 삶을 '간절히' 바라서 된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임용준비생을 벗어나고 싶은 게 첫째였고, 대안학교에서 월급 120만 원을 받을 때 10년 차 선생님의 월급도 120만 원인 것을 보고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 둘째였고, 시험에 진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오히려 교사가 되고 싶다는 간절함보다 이러한 간절함이 더 컸다.
이유가 무엇이든 나름의 진심을 담아 노력을 했고, 어찌 되었든 원하는 것들을 얻기는 했다. 성취의 영역만 이야기했지만. 사람 관계의 영역도 마찬가지였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내려놓고 양보하고 조율하려고 노력하기.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진심을 다해서 노력하기.
노력하고 내가 변화하니 얼추 원하는 것들이 얻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당연히 100%는 아니었다. 욕심이 난 나는 노력을 더 하면 %를 더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한 노력을 해왔다.
그러다가 내 생각을 전환시키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게 임신이었다.
결혼 7년 차에 접어들어 뒤늦게 아이를 가지기 위해 노력을 시작했다. 주기를 맞춰서 배란 테스트기로 배란일을 확인하고 노력했지만 되지 않았다.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도 하고, 주사도 맞았지만 되지 않았다. 난임 전문 기관에 가서 인공수정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배란 주사를 시간 맞혀서 맞고 약을 먹는 것. 배란 일을 기다리고 임신일까 아닐까 매일 걱정하는 과정. 몸이 아플 때 약을 먹지 않고 괜찮을까 매일 찾아보고 조마조마해하던 그 과정은 스트레스와 조급함의 연속이었다.
간절히 바라면 온다는데, 인터넷 글들을 보면 간절하게 10차 가까이 시도를 해도 되지 않은 사람들 투성이. 별로 노력한 건 아니지만 한 번에 되었다고 기뻐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너무 간절하면 스트레스받아서 잘 되지 않아요.'라는 말을 보고 충격받았다. 아니 간절하게 진심으로 기도한다는 사람들인데, 간절하지 말라니. 간절함이 조절이 되는 것이었나? 그리고 성공했으니까 저렇게 말하는 거지. 하면서 원망의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다.
애매하게 간절했던 걸까? 3번의 인공수정 시도 끝에 임신이 되었던 아이는 8주 만에 떠나갔다.
진심 같은 소리 하네. 간절함 같은 소리 하네. 화를 내다가
간절함이 부족했나? 너무 간절해서 안 된 건가? 질문하다가
온갖 생각을 다했다.
좋다는 음식을 먹고, 나쁘다는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과 식품을 피하고, 운동도 하고, 마음의 평화를 다지기 위해 책 읽고 글도 쓰고(나의 글쓰기와 책 읽기도 사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도대체 무슨 노력을 더 해야 하며, 무슨 노력이 과해서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뇌가 비어버린 것 같은 2달 정도를 보낸 것 같다. 그동안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이유를 너무 찾고 싶어서. 자책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라도 알고 싶어서.
그러다 보니 알았다. 자연 유산의 확률은 10~15%로 생각보다 높다는 과학적 사실을 떠나서. 내 노력의 영역이 아닌 부분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그리고 역설적으로, 더 편안해졌다.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없고 그냥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TJ(사고형, 계획형)로서 통제와 계획 없이는 버티지 못했던 내가 지금은 꽤나 자유롭다. 통제도 계획도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의미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오히려 노력과 생각은 편안하게 더 하게 된 게 아이러니이다. 결과를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그 과정에서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의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노력을 했지만, 지금은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작가님의 말을 빌자면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는' 법을 익히게 된 것 같다.
잘 풀리지 않는 인생이 힘겨울 때마다 과거 탓, 남 탓, 세상 탓 푸념으로 넘기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삶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리지는 않았으므로, 삶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당신의 잘못으로만 해석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세상은 나를 평가하고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우리는 늘 '나름대로'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니 삶의 험난한 그 모든 것이 나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이해해 보기를, 그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너무 미워하지 말기를 권한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 이두형 p. 37.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삶에서 고통은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이 세상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 그중에서 내 신체조차 나는 마음대로 바꾸거나 조종할 수 없고, 서서히 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내 생각뿐이다. 첫 번째 변화의 시작. 나를 드라마틱하게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말기.
아예 안 미워할 수도 없으니까 조금만 미워하기.
이것뿐이다.
나를 덜 미워하기 시작하는 것이 수용의 시작이고
나를 덜 미워하고 연민하는 것이 수용의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내가 밉다면, 조금만 덜 미워하고, 조금만 덜 탓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나는 문제 투성이지만, 그 문제들을 끌어안고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