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1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오늘의 챕터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우리가 사랑을 느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사소한 것을 기억해 주는 사람. 나의 미묘한 감정선을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 힘든 순간이라도 따뜻한 말과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 언제고 삶의 위기가 오더라도 함께 한다면 든든할 사람. 늘 서로 아껴주고 지지해 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사람.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드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마음이 열린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다면 '내가 나에게 좋은 존재가 되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172.
스스로를 사랑한다.
인용문에서도 표현했지만 우리는 그런 '드문' 사람을 사랑하고 마음을 연다.
내가 나 자신에게 그런 드문 사람이 되어준다는 일이 가능할까?
예쁜 말이 많이 쓰여있는 인용문이지만, 내가 나에게 저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불쑥 솟아난다. 의심하지 말고 스스로를 믿어주자는 게 지난 챕터였는데, 믿을 수 없어서 '믿음'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말만 떠오르는 건 왜일까?
나는 달콤하고 다정하고 따뜻한 말을 꿈꾸면서도, 그것은 '꿈'에 불과하다고 항상 생각해 버리게 된다. 그래서 나에게 더 꽂히는 문장은 이런 문장이다.
'자기 부정과 혐오를 거치지 않은 자기 긍정은 모래성 같은 가짜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172.
그냥 긍정적이고 밝고 따뜻한 말에 다가가기 어려운 내게, 어쩌면 더 한 줄기 빛과 같은 말이다. 오히려 이게 더 큰 긍정의 에너지라는 생각도 든다. '자기 부정과 혐오'까지도 감싸 안아주는, 말 그대로 '수용'의 말이기 때문이다.
'자기부정'이든 '혐오'든 어쩌면 내 사전에서 지우고 싶은 말이고 외면하고 싶은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아직도 '사랑', '희망', '믿음', '자기 긍정' 이런 말보다는 '자기부정'이나 '혐오'랑 더 가깝다.
그런데, 결국 '자기부정'과 '혐오'도 '나'의 일부 아닌가?
그런 나쁜 것들을 다 떼어내고 예쁜 것만 모아놓은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젠가가 떠오른다. 아마 그런 나쁜 것들을 다 떼어내고 나면 블록이 많이 비어버린 젠가처럼 나는 흔들릴 것 같다. 나의 부정적인 면이 오히려 내 삶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고 지탱해 온 요소이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원하는 '안정'과 '평화'를 찾으려면 나쁜 것들과 함께 가야 한다. 그것까지 끌어안아서 다 나로 탄탄하게 쌓아야 내가 더 높고 튼튼해진다. 어쩌면 내가 가장 버리고 싶은 그것. 나의 자기 부정과 혐오의 정점인 그것이, 빼자마자 무너지는 젠가의 핵심 블록인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자기부정'과 '혐오'를 지나야 만 진짜 '자기 긍정'이 온다는 말은 와닿는다. 나는 내게서 무언가를 없애고 싶지 않다. 군데군데 구멍 난 내가 아니라, 울퉁불퉁 뒤뚱뒤뚱하더라도 '나'를 전부 가지고 있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맨 첫 인용구로 돌아가면. 우리는 이런 '드문'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다.
사소한 것을 기억해 주는 사람.
나의 미묘한 감정선을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
힘든 순간이라도 따뜻한 말과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
언제고 삶의 위기가 오더라도 함께 한다면 든든할 사람.
늘 서로 아껴주고 지지해 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사람.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
그런데 잘 읽어보면 결국 나의 '일부'가 아니라 나의 작고 사소한 것, 미묘한 것까지 함께할 수 있어야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나의 단점까지 사랑하는 말도 안 되는 드라마 같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적어도 나의 나쁜 점과 함께 가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연인을 만날 때나, 특히 결혼을 할 때에는 현실의 삶을 계속 이어나갈 동반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장점이 큰 사람도 좋지만, 단점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어떤 사람이든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장점과 매력이 하나쯤은 다 있다. 하지만 '계속' 함께 가려면 '단점'을 끌어안아야만 한다.
배우자와는 이혼할 수 있지만, '나'와는 죽기 전에 이별할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의 답도 하나다. 나의 '나쁜 점'을 인정하고 끌어안으며 같이 가는 것.
내가 나를 죽도록 사랑하고 미친 듯이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그것도 병일 수 있다)
미친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나와 그럭저럭 함께 가는 방법에는 나를 미워하고 혐오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나의 나쁜 점들을 하나하나 응시해 보자.
힘들지만, 자기 부정과 혐오가 올라오는 그 지점을 바라보자.
그리고 그 부족한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버티고 살아왔음에 '연민'해보자.
사랑보다 정이 무섭다는 어른들 말씀이 맞다.
긍정적인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지 못하는 나를 탓하는 대신,
긍정적인 말이 낯선 나 자신을 불쌍히 여겨보자.
동정도 '정'이다.
나를 사랑하지는 않아도 정 붙이고 한평생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 정도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