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오늘 이야기는 한없이 가볍다. 나한테는 조금은 진지하게 걱정되는 이야기이지만, 사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웃기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유난히 배가 조금 쑤셨다. 학교에서 책들을 좀 날라서 그런가? 그 잠깐 30분 몇 권씩 옮긴 것에 불과한데... 내가 잘못한 건가 불안감이 밀려온다. 몇 번씩 챗 gpt에게 같은 것을 물어보며 불안해하기보다는 그냥 재미있는 얘기나 하며 가벼운 마음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나의 어린 시절 태몽은 호랑이 꿈이었다. 외할아버지가 길을 가는데 커다란 호랑이가 나타나서 할아버지를 덮쳤다는, 누가 봐도 태몽일 수밖에 없는 꿈. 외할아버지는 그래서 아들을 매우 기대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남아 선호 사상이 당연하던 시기이기도 했고, 외가에는 아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큰 이모와 우리 엄마, 작은 이모가 있다. 그리고 큰 이모는 딸 셋, 우리 엄마는 언니와 나, 작은 이모도 딸 둘을 낳았다. (이 정도면 엄청난 우먼 파워 아닐까.)
어쨌든 외할아버지는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기대하시다가, 엄마가 나를 임신하고 계셨던 중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마 마지막까지 드디어 아들 손주가 나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셨을 것 같다. 태몽과 주변의 기대 속에 나는 장군감인 여아로 태어났다. 바깥에 데리고 나갈 때마다 하도 '그놈 참 잘 생겼다'는 칭찬을 들어서, 엄마는 딸이라는 것을 밝히기를 포기했다고 했다.
어쨌든 나도 뭔가 과일이나 귀여운 동물 같은 태몽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인정받는 맹수 중의 맹수가 태몽이라는 점이 참 마음에 들기도 한다.
나는 꿈을 참 잘 꾸지만 보통 매우 허무맹랑한 꿈을 꾼다. 첫 임신 때도 역시 허무맹랑한 꿈을 꾸었는데, 나는 그게 튼실이의 태몽이라고 믿는다.
평범한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길에 커다란 뱀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횡단보도와 도로까지 점령한 뱀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정말 슉슉 뱀들을 피해서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그러자 지나가던 요구르트 아줌마가 '뱀을 그렇게 피하면 어떻게 해. 이렇게 잡아야지'라고 직접 시연을 해주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 저는 괜찮습니다. 너무 무서운걸요'라고 예의 바르게 거절하며 뱀을 피했다. 나무 뒤에 뱀들이 걸려있는 길도 무사히 지나갔다고 생각하는데, 그 순간 무언가가 내 등짝을 퍽 치고 떨어졌다. 나는 그 충격에 놀라 잠에서 깨었다.
허무맹랑한 스토리지만 태몽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첫째로 뱀이나 구렁이 태몽이 흔하기도 하고 살면서 꿈에 뱀이 나온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튼실이가 잘 태어났다면 뱀띠였기도 하다.
둘째로는 꿈속에서 뒤돌아서 보지는 못했지만, 내 등을 친 것이 뱀이라고 꿈에서도, 꿈에서 깨서도 믿었다는 것이다. 태몽에서 중요한 것이 그 생명체와 접촉하는 것이라고 한다. 과일을 치마폭에 한아름 딴다든지, 동물이 품 안에 안겨온다든지 하는 것처럼. 어쩌면 자꾸 뱀을 피하기만 하던 내가 답답해서 튼실이가 내 뒤통수를 뒤에서 붙잡은 게 아닐까?
좀 슬퍼지긴 하지만, 내가 뒤돌아서 뱀을 꼭 껴안았다면, 그렇게 많던 뱀 중에 누구 하나라도 안아줬으면 튼실이가 건강하게 태어났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튼실이 덕분에 뒤통수를 맞고 제대로 깨달았으니. 후회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리고 얼마 전에 또 이상한 꿈을 꿨는데, 나는 전혀 태몽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편이 태몽이 아니냐고 해서 서로 갈등이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어벤저스와 같은 초능력 집단의 일원이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세계 멸망이 다가오며 여기저기에서 괴수가 창궐했고, 나와 내 동료들은 열심히 괴수와 싸웠다. 하지만 나는 변변한 초능력이 없어서 나의 능력 부족을 절감했고, 우리는 싸움에서 밀려 큰 건물의 옥상으로 도망쳤다.
그곳에 세계를 멸망으로 몰고갈 마왕이 강림했는데, 디아블로였다.
그렇다. 00년대를 강타했던 인기 게임 디아블로의 보스. 불의 마왕.. 온몸을 불로 휘감고 괴수들을 부리는 마왕. 나는 디아블로를 보면서 그 마왕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에 빠져서 잠에서 깨어났다.
허무한 꿈이라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갑자기 태몽이 아니냐는 것이다. 정말 어이가 없어서. 우리 쑥쑥이가 (둘째 아이의 태명을 지었다) 디아블로, 악마라는 건가... 물론 악마 왕이니까 악마 나부랭이보다는 낫나 싶다가도 울컥하고, 진짜 디아블로가 태명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두렵기도 하고.... 그냥 웃기기도 하다.
그래도 몸에 닿아야 보통 태몽이라고 하니까 , 나는 초능력이 변변치 않아서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설마 내가 죽인 디아블로의 수하 엑스트라괴물 1이 우리 쑥쑥이는 아니겠지.. ) 그리고 태몽은 보통 본인보다 주변에서 꿔주는 거라고 하니까. 태몽이 아닐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태몽처럼 비과학적인 이야기도 없는데, 우리는 무슨 근거로 태몽을 꾸고 태몽을 따지는 걸까.
아직 부모님들께도 친척에게도 말한 적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우리 쑥쑥이의 태몽을 좋고 상서로운 것으로 대신 꿔주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디아블로는 아니야...)
태몽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혹시나 우리 아이만 태몽이 없어서 속상해한다면. 그때 얘기해 줘야겠다.
너는 엄청 쎈 디아블로 악마왕이었다고....
그리고 믿어 본다. 우리 쑥쑥이도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 자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