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고 싶지만 비밀이고 싶은 마음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by 예그림

요즘은 임밍아웃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임신 사실을 알리는 것.


당연히 축하하고 축복받을 이야기이지만, 한 편에서는 임밍아웃 후 상처받은 이야기들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8주 차인 나는 반임밍아웃 상태이다.

친정에는 했고, 시댁엔 안 했고.

친한 친구 몇 명한테는 했고, 지인이나 직장에는 안 했고.


첫 임신에는 큰 고민 없이 여기저기 말하고 싶기만 했는데(물론 그런 마음도 딱 일주일뿐이고 그 이후로는 계속 아이가 잘 크지 않아서 혼돈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말하고 싶은데 말하고 싶지 않다.

축하받고 싶으면서도 왠지 부끄럽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되기도 하며, 배려받고 싶지만 민폐가 되거나 배제되고 싶지는 않은 마음.


친정에도 계획은 없었지만, 이전 유산 경험이 있다 보니 이야기하게 되었다. 얼마 전 엄마 생신이 있었는데 임신 초기에 이동하는 게 괜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엄마아빠는 듣자마자 절대 오지 말라고 하시며 우리 집까지 직접 와서 밥 사주고 가셨다.

시댁, 친정 모두 다 한 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추석에 시댁에는 가지만 친정에서는 부모님이 와주시기로 했다.


친정에는 사실 빨리 말씀드리고 좀 찡찡거려보고 싶은 마음 반, 걱정하실까 안정기에 말하고 싶은 마음 반이었는데.

시댁에는 왜 나중에 말씀드리고 싶을까.


학교에도 알리고 모성보호시간(임산부가 하루 2시간 이내로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할 수 있다)을 쓸까, 안정기는 지나서 알릴까를 엄청 고민했다.

살짝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알리고 모성보호시간을 쓰려고 했는데, 마침 그 마음을 먹은 날에 교장선생님이 장기재직휴가를 떠나셨다. 교장선생님까지 결재를 받아야 사용 가능한 휴가이기에 그냥 맘 편히 추석 지나고 알리기로 했다. 어차피 다음 주는 시험기간이기도 하니까.


사실 내일 야자감독도 고민이 많았지만 그냥 하기로 했다. 야자감독 한다고 당장 아이가 잘못되거나 한 것도 아니고, 혹시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불과하니까. 내가 빠지면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마음 불편함보다는 그냥 밤까지 남기로 했다.


이전 학교에서 동시에 5명의 선생님이 임신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맨날 돌아오는 급식지도 당번과 야자 지도로 짜증이 났던 기억이 있다. 나도 그런 입장이 되는 것은 싫은 마음도 있다. 물론 이것도 입덧이 심하지 않고 일상이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라서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오늘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부장님께 말씀을 드리게 됐는데, 부장님이 이미 눈치를 채고 계셔서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동네방네 티를 내고 다녔나.... 티 내고 싶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드러났나?


수상했을 수 있다. 맨날 박스들을 직접 들어 옮기고 힘쓰던 사람이 한 두 박스도 옮기는 걸 도와달라고 하지 않나.. 중간에 한번 하혈이 잠시 있어서 병원에 가고(지금은 멀쩡하다), 아파도 보통 참는 사람이 기회가 되면 조퇴를 하기도 했으니..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 없다는 걸 알지만, 나만 말 안 했다고 생각하고 다들 알고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하면 그게 더 부끄럽고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여하튼. 뭐든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까.

계획 없이. 고민 없이. 지금 마음 가는 대로 가보려 한다.


일단 다음 주 검진도, 시험기간도, 추석도 잘 지나가길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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