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마존에서 물안경을 싸게 샀다.
아들이 요즘 수영, 잠수에 푹 빠져있어서 함께 놀기 위해 구매했다.
그러나 싼 값에 온 물안경은 너무 부실해서 반품 신청을 했단다.
반품 신청 당일, 딜리버리 맨이 우리 타워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와서 물품을 갖고 내려갔다. 아마존의 배송은 칭찬할만하다.
한 흑인이 나를 보더니 손짓하는 것을 보니 택배 아저씨인가 보다. 내 물건을 받고 송장 처리를 정신없이 한다. 그 와중에 내가 고맙다고 하니 그는 “You’re welcome!"이라며 답변까지 하고 고개를 돌린다. 바쁜 와중에도 고객을 끝까지 응대하는 그..
단지 3초 정도의 만남이었는데, 그를 등지고 집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며 가슴 뭉클해졌다.
왜일까?
힘들게 일하는 저 아프리칸이 불쌍해서일까?
아니면 미안한 마음?
그런 감정은 아닌 것 같다.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노동으로 성실히 채워가는 태도가 나를 감동시켰다.
그 아프리카 사람은 한 달에 60만원도 벌지 못할 것이다. 숙소도 합숙 컨테이너 같은데에서 지낼 것이고, 운전하느라 끼니도 제대로 먹기 힘들 것이며, 어느 누군가에게는 조롱과 무시도 당할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 겨우 쉴 수 있을테고, 가족들은 자기 나라에 있어 그들이 그리울 것이다. 그의 노동환경과 조건, 삶의 환경은 불평과 불성실한 삶의 태도의 변명을 합리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만난 그 딜리버리 맨 아프리칸은 성실과 열심의 향기를 풍겼다.
삶을 소중히 여기고 숙연히 받아들이는 것이랄까.
이런 게 삶의 내공일까?
오늘 나는 그를 보며 부끄러웠다.
코로나로 힘들다며 답답하다며 불평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내가 부끄러웠다.
지금 이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어리석게 보인다.
어떻게 하면 이 답답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에만 골몰하는 내가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유다 포로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했다.
“너희는 거기에서 집을 짓고 살아라. 과수원을 새로 마련하고 과일을 따먹으며 살아라. 장가들어 아들딸을 낳고 며느리와 사위를 삼아 손자 손녀를 보아라. 인구가 줄어서는 안된다. 불어나야 한다. 나에게 쫓겨 사로잡혀 가 사는 그 나라가 잘되도록 힘쓰며 잘 되기를 나에게 빌어라. 그 나라가 잘 되어야 너희도 잘 될 것이다."
자기 나라를 망하게 만든 나라로 끌려가며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텐데.. 도망치고 싶었을텐데.. 잘 살아내라고 하나님은 포로들에게 말씀하신다.
나도.. 이 상황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잘 살아내기 위해 방도를 찾아야겠다.
이렇게 주님 말씀 붙잡고 삶을 버텨내다보면,
나에게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겠지?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잘 기획된 프로그램과 가르침 속에서 나올 수도 있겠지만, 하루하루 주님 사랑 품고 인내와 성실로 살아갈 때 나를 스쳐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인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많은 말이 아니더라도, 오래 있지 않아도,
단지 3초의 만남 속에서라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