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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Mar 27. 2021

중간의 사람

그동안의 내 삶은 무엇을해도 중간쯤이었다.

성적도 학교도 회사도 모두 중간이었다.

뭐하나 뛰어나게 잘하지 못했고 그냥 저냥 무난하게 성적을 받고 중간의 학교를 들어가고

그냥 저냥 회사에 취업했다.

애매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나보다 더 좋은 회사를 들어가기도 했다.

나는 힘들다고 말하기도 부럽다고 말하기도 애매했다.


힘들 때면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며 위안을 얻었고

열심히 살고 싶어질 때면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보며 부럽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나는 그저 회사에 다니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적당히 맞춘 것에 만족하며 지냈다.

그게 나의 생각인지 다른 사람의 생각인지 돌아보지 않은 채.




어느덧 5년 차 디자이너가 되어 올해 3번째 회사를 무난하게 다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무난하지 않음)

그런데 문득 내 삶이 이대로 흘러간뒤 그 끝을 생각해보았다.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그리고 회사에서 보았던 좋지 않은 모습들도 많았다.

스타트업이라고 하지만 수직적인분위기

그리고  소비자를 숫자로만 측정하는 이들을 보며 회사의 비전과 꿈은 어디에 있는가 회의감을 느꼈다.

그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과장들만 잔뜩 늘어놓는 것처럼 느껴졌다.


리뉴얼 디자인 업무를 하고 있던 나는 디자인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디자인을 하는 이유는 뭐지?

지금 나는 누구를 위한 디자인을 하고 있는 거지?

디자이너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인가 대표를 위한 것인가 소비자를 위한 것인가?


슬프게도 정답은 세 가지 모두 아니었다.
그 누구의 만족이 아닌 상황에 맞추어서 흘러가는 디자인을 한 거였다.



처음에는 원래의 디자인을 조금만 변형한다고 해서 디자인을 진행했는데

갑자기, 어느날, 새롭게 

다시 디자인 해야겠다고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는 아무생각없이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이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1. 회사에서 업무를 수행할 때는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어떤 결정을 할 때 독단적으로 결정 통보를 하는 게 아니라 의견과 생각을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2. 한 사건을 보면 대략 그 회사 혹은 대표의 성향이 드러난다.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대략 드러난다.)

3. 회사는 대표의 성격 따라 간다. (회사의 규모가 작을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리더가 중요하다.)


참 이런 일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디자인을 마무리 했다.

처음 입사하고 삼 개월 동안은 정말 많은 칭찬을 받으며 일했고 주도적으로 워크샵과 설문조사 그리고 디자인업무를 진행했다.

그리고 축하받으며 (인재가 들어왔다는 말을 들으며) 정사원이 되었다.

그런데 디자인 리뉴얼이 끝나갈 때쯤, 브랜드 디자이너의 역할이 줄어드니 나라는 사람은 회사에서 고민거리가 되었다.

이미 디자이너가 몇 명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디자인을 할 수도 없고

서비스와 개발이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브랜드 디자이너의 역할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를 불러서 앞으로 이런저런 일을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싫다고 어떻게 말을 할수가있는가?

회사에서 하기 싫어했던 일을 나에게 떠넘기는 느낌이었다.


상황은 점점 그렇게 되어갔고 나는 의욕을 잃어갔다.

이게 번아웃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퇴사를 고민하던 중 모욕적인 말을 듣고 더이상 이제는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모두 직장을 다니는 게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던 때.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퇴사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의 고민은 너무나 많았다.



불안함을 나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던 나이기에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의
불안해할 내 모습을 또 불안해 했다.


퇴사 하던 날의 하늘은 너무나 이뻤다.


그렇게 중간의 나는 어느날 중간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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