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 첫날인데 새벽녘 내 옆으로 온 아이를 안아주는데 뭔가 뜨끈한 느낌이 들었다. 이마를 짚어보니 역시나 뜨거웠고 부랴부랴 체온계를 가지고 와서 재보니 39도였다. 해열제를 먹이고 일단 재웠다가 아침이 돼서 병원에 갔는데 연휴라 문을 연 일부 병원으로 몰렸는지 이미 문전성시로 대기시간이 기본 1시간 이상은 될 것 같았다.
아이에게 차에 가서 편히 쉬다가 다시 오자고 했지만 싫다고 해서 겨우 발견한 빈 좌석 하나에 7살 아이를 안고 앉아서 끝없는 기다림을 시작했다.
아이는 오한이 들어 추워했고 그런 아이를 나는 최대한 감싸 안아주었더니 내 품에서 30여분을 잤다. 잠든 아이를 안고 가만 보고 있는데 이런 순간엔 왜 이렇게 울컥하는지. 찰나의 순간에도 대기하는 중에 열이 더 올라 열성경련을 하면 어쩌나, 그럼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로 대응을 잘할 수 있을까 상상을 하게 되고 그 잠깐 상상한 상황에 울컥하여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을 또 집어삼켰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보통의 상황은 의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막상 아프게 되면 한없이 걱정만 앞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로 돌아가게 되는 것 같다.
잠이 깬 아이는 토를 할 것 같다고 해서 병원 화장실로 바로 가서 실제로 토를 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대신 아파줄 수 없는 상황이 야속하고 속상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니 역시 빈좌석은 이제 없었고, 아이는 서 있는 게 힘들다고 해서 벽 쪽에 같이 쪼그려 앉았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진료를 보러 들어가서 상태를 설명했더니 듣자마자 독감이라며 검사를 받고 다시 오라고 했다.
코로나 시기를 거쳐와서 코를 찔러본 경험이 있는 아이는 검사하는 걸 온몸으로 거부하고 울고 소리를 질러서 간호사와 나는 애를 먹었다. 좋게도 달래고 혼을 내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해서 우여곡절 끝에 검사를 받았고 양성의 결과를 받았다.
요즘엔 먹는 타미플루 약 대신 수액으로 맞는 약이 있고 그게 회복이 더 빠르다고 했는데 역시나 아이는 거부했다. 겁이 많아서 예방 주사 맞는 것도 힘들어하던 아이다. 아이를 잘 아는 엄마인 나는 설득할 자신이 없었는데 오히려 의사 선생님이 약을 먹으면 분명 토를 할 거라고 수액을 강하게 권유하셨고 안 맞으면 대신 더 큰 왕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해서 아이는 생에 처음으로 수액을 맞게 되었다.
독감 약과 진통제, 해열제가 한 방울 한 방울 링거줄을 타고 아이의 몸으로 들어가는 걸 조용히 지켜보는 동안 아이는 잠이 들었다. 처음엔 춥다고 해서 이불을 다 덮었는데 나중에 덥다고 해서 보니 땀이 배출돼서 더웠던 것 같다. 땀이 나면서 열도 내렸고 다 맞았을 때 아이의 컨디션은 눈에 띄게 회복이 되었다.
그냥 집에 가려다 주삿바늘에 처음 도전함에 보상을 해주고 싶어 옆에 있는 문구점에서 갖고 싶은걸 하나 사주고 집으로 들어왔다.
항상 처음이 어렵다. 이번에 수액을 맞고 몸이 한결 나아진걸 직접 깨닫게 되었으니 다음번 독감 때는 내가 설득하지 않아도 본인이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번 연휴는 이렇게 아이의 독감으로 친정 가는 티켓을 취소하고 집에서 휴식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지만, 내가 출근하지 않고 쉬는 날이라 케어해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ps. 약 효과가 너무 좋은지 아이는 아팠던 걸 벌써 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