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제 우산이 없어졌어요.

우산도둑은 중학생 아이들

by 비비드 드림

얼마 전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그날은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해서 아무 계획이 없이 아이들과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 날이었다. 둘째는 느지막이 낮잠이 들어 나의 시간을 잠시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 공부를 시작하면 항상 필요했던 색깔 펜이 생각이 났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지만 둘째가 잠이 든 틈을 타 혼자 얼른 다녀와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입으니 첫째 아이가 함께 가고 싶다고 한다. 초등학생이 된 첫째는 이제 옷을 꺼내주면 혼자서 입을 수도 있고 같이 나가도 내가 안아주거나 할 일은 없으니 솔직히 부담이 덜한 것은 사실이다. 아이도 심심하던 차에 문구점에 따라가서 장난감 딱 하나만 사겠다고 말하는 게 귀엽기도 했다. 그렇게 첫째 아이와 집을 나서 동네 문구점으로 향했다.


우리가 나가기 전에는 그 정도의 빗줄기는 아니었는데, 막상 나가고 보니 이건 태풍 수준이었다. 바로 아이와 우산을 따로 쓴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문구점에 도착해서 아이는 장난감을 이것저것 구경하기 시작했고, 나는 오로지 펜이 있는 코너에서 열심히 색깔 펜들을 보았다. 내가 사고 싶었던 색깔은 보라색. 내가 학생 때 즐겨 쓰고 선호했던 특정 브랜드의 펜을 생각하고 갔었는데 동네 문구점이라서 그런지 온통 검정, 빨강, 파란색의 펜들만 주를 이뤘다. 아쉬운 마음에 핑크색을 사고 나갈까 고민을 하다가 근처에 있는 다른 문구점을 한 번 더 가보기로 하고 아이와 나왔다.


이제 꽂아두었던 우산을 뽑아들고 가기만 하면 됐는데, 내 검은색 우산이 없는 거다. 아이와 이리저리 둘러봐도 정말 없는 게 맞았다. (아이의 우산은 있었다.) 비가 그쳤으면 모르겠지만 여전히 태풍 수준은 아니더라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다시 들어가 문구점 사장님께 자초지종을 말했다.


"사장님, 제 우산을 여기에 꽂아두었는데 우산이 없어졌네요."


사장님도 많이 당황하신 것 같았다. 누가 잘 못 들고 간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다른 손님이 다녀갔는지를 가만 생각해 보신다. 나도 가만 생각해 보니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두 아이가 들어왔다가 그냥 나갔던 게 생각이 났다. 한 아이가 '야, 그건 여기에 없잖아'라는 말을 하며 자연스럽게 거의 들어옴과 동시에 나갔었다. 그 아이들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사장님이 cctv를 한번 보겠다고 하셔서 기다렸다.


cctv를 돌려 보시고는 사장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세상에!"


역시나 그 아이들이었다. 화면을 보니 비를 피해 문구점 앞으로 왔다. 두 아이 모두 우산이 없었는지 우산 꽂이를 요리조리 보다가 우산을 가져갈까 말까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다 문구점 안으로 들어와다가 금방 다시 나갔는데 나가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내 우산을 꺼내 가지고 간다. 한 아이는 이미 빠르게 도망치는 듯 먼저 문구점을 떠났고 나머지 한 아이가 아무렇지 않은 듯 우산을 꺼내 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사장님은 아이들이 처음부터 마음을 먹고 가져가려고 문구점 안에 일부러 잠시 들렀다 다시 나갔다는 걸 알게 되고 정말 놀라워하셨다. 나 또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영악한 것인가. 사장님도 10년 넘게 문구점을 운영하면서 잘 못 가져간 적은 많았어도 이렇게 의도적으로 가져간 건 처음이라 너무나 당황스럽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보고 신고를 하라고 하신다. 하지만 나는 신고까지는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신고를 통해 그 아이들을 찾아서 실수를 바로잡아주고 정직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맞는 것이긴 하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에 한번은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비가 너무 심하게 내리긴 했지..라며 당황스러워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고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이 모든 상황을 첫째 아이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기심 많은 아이는 자기도 cctv를 보고 싶다고 하고, 그 누나들이 가져간 게 맞냐며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어 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처음 겪는 상황이고(나 또한 처음이었지만) 모든 게 신기했을 터이다.


이 상황을 빌어 아이에게 제대로 교육을 해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다음에 친구들끼리 놀다가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우산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우선은 비를 피해 보고 비가 그치지 않더라도 남의 우산을 마음대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집에 우산이 많아도 당장 비가 오면 비를 맞을 수는 없으니 우산을 그냥 새로 사면 된다고. 만약 용돈이 없다면 상점 혹은 문구점에 가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면 엄마가 통화하고 돈을 보내줄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내 생각에 아이는 이날의 경험으로 앞으로 절대 누군가의 우산을 함부로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그 문구점 사장님이 허름하고 낡아서 다시 찾으러 올 것 같지 않은 핑크색 작은 우산 하나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혹시라도 아이들이 우산을 가지고 오면 연락을 주시겠다며 연락처도 남겨 달라고 하셨다. 느낌상 다시 가져오지 않을 것 같아서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꼭 남겨달라고 사정하셔서 번호를 남기긴 했지만 역시나 연락은 없으셨다.


다른 문구점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비는 언제 쏟아졌냐는 듯 그쳐있었고 어차피 가는 길이라 다시 문구점에 들러 받았던 핑크색 우산도 돌려드렸다. 사장님은 우산 꽂이 근처에 주의 문구를 붙여놓는 작업을 열심히 하고 계셨고, 나에게 거듭 미안해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서는 집으로 돌아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잊고 있다가도 한 번씩 그날의 그 상황이 떠오른다. 사장님이 '요즘 아이들이 영악하다'라고 말을 하셨는데 요즘 아이들이 영악한 건지 그냥 순간의 판단 미스로, 이후는 어떻게 될지 모르고 저지른 잠깐의 실수는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본다. 요즘은 곳곳에 cctv가 없는 데가 없는데 아무 생각도 못 하고 행동한 걸 보면 아직은 판단이 거기까지 닿지 못하는 아이들인 것 같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 또 성인이 되면 사고의 폭도 넓어지기 때문에 훗날 그 아이들도 그날의 행동을 떠올리며 후회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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