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SO-SO한 삶의 이야기 2
토요일 오후 소파에서 책 몇 장을 넘기 다 잠이 든 나는 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조금 더 잘까 싶기도 했지만 아이의 부산스러움은 결국 나를 일어서게 만들었다.
우리 집은 느릿하게 걸어 다니는 아이는 있어도 재빠르게 뛰어다니는 아이는 없다. 하긴 19~21살 아이가(?)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면 그게 더 큰 일이긴 하다. 잠을 포기하고 커피를 내리는 30분 동안 아이는 뛰다 멈추다를 반복하더니 곧 아주 잠잠해졌다. 조용한 것이 좋기는 하지만 엄마의 잔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생각하니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난 주말 딸과 점심을 먹는데 아이는 점심을 먹는 내내 뛰어다녔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얼굴도 모르는 윗집 아이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평일에도 이렇게 뛰어다니니?"(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글쎄... 이어폰을 많이 쓰니까 잘 모르겠네"(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그래도 얘는 피아노는 안 치잖아. 피아노 소리 요새 못 들었지?"
"..."
"윗 층 사람들 이사 가고 새로 이사 왔잖아. 몰랐어?"
"아~ 정말? 몰랐어!" 한다.
그러면서 고 3인 딸아이는 고맙게도
"아이인데 좀 뛰어다녀야지!" 한다.
이번에 이사 온 아이는 정말 양반이다. 뛰어다니는 소리도 아주 날렵한 것이 저학년이 틀림없다. 한 아파트에 12년을 살다 보니 그사이 윗 층 사람들이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에 살았던 사람들은 가끔 러닝머신을 뛰긴 했어도 특별히 나쁘지 않았다. 너무 열심히 운동을 했으면 좀 괴로웠을 텐데 아주 가끔씩 러닝머신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쭉 몇 년이 지나 3~4년 전에 이사 온 사람들이 정말 대박이었다. 바로 이전의 위층 사람들이었는데 아이가 둘이었고 큰아이가 고학년에 덩치가 좀 있는 남자아이였다. 주방이나 거실에 있으면 항상 쿵쿵 거리는 소리가 났고 한 번 뛰기 시작하면 쉼 없이 뛰었다. 그리고 베개에 머리만 대면 정신없이 잠이 드는 나를 종종 새벽에 잠에서 깨게 만들었다. 물론 아이는 아니겠지만 윗집에선 새벽에 뭔가를 그렇게~ 끌고 다녔다. 새벽뿐 아니라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 자명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는데 너무너무 화가 난 나는 두 번을 뛰어 올라가-지금 생각하면 너무 창피하지만-화를 낸 적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목요일 저녁 8시가 되면 주인 여자가 피아노 레슨을 받는지 같은 곡을 계속 반복해서 연습했는데 정말 무섭게도 전혀 실력이 늘지 않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일도 없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피아노를 가르쳤다면
"돈을 쓰레기통에 쳐 박는 짓이야! 왜 실력이 하나도 늘지 않는 거니?"라고 화를 마구 내고 선생님을 바꿨을 것이다.(나는 못된 엄마다. 못 참아~)
때마침 층간 소음 때문에 이웃 간 흉흉한 사건이 신문에 많이 올라오던 때였다. 내가 다니던 출판사 편집장은 생긴 것과 다르게 상당히 예민한 사람이었다. 한동안 비어 있던 위층에 신혼부부가 이사 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온갖 잡다한 소리로 종종 잠에서 깬다는 것이었다. 둘이 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너무 시끄러워서 슬리퍼를 사다 주고 싶다고 열변을 토했는데, 집에서는 카펫을 깔고 슬리퍼를 신고 까치발로 걸어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기본이고 예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카펫은 청소가 어렵고, 슬리퍼는 바닥이 금방 때가 타고, 매일 쓸고 닦는 것은 신발의 고통에서 벗어나 맨발로 걸어 다닐 자유를 주기 위함인데 내 집에서 꼭 그래야만 하는가? 싶었다.
그 예민한 편집장은 민원을 아주 많이 넣었기 때문에 위층 사람들과 안면을 틀 정도가 되었다. 위층 여자도 보통이 아니었는지 편집장을 언니라고 부르며 손님을 초대하는 날이면 편집장에게 미리 전화를 걸어 양해를 부탁할 정도까지 되었다.
한 번은 편집장이
"너무 쿵쿵거리고 시끄러워서 복도에 나가 위를 올려다보니 윗집에 불이 꺼져있었어"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일반 아파트랑 다르게 통 유리로 된 집이라 집안에선 위층을 감시할 수 없는 구조였음)
가끔 위층 사람들이 들어왔는지 안 들어왔는지 복도에 나가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야~ 너 정말 사이코다! 너는 그냥 단독주택에 살아~"
(내가 한 말이 아니고 동생인 팀장님 얘기인데 둘은 친자매 사이다.)
"... 그러게 그런데 이상하게 쿵쿵거리는 소리가 계속 난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50평대 후반의 평수에 특이하게도 방을 하나 없애 더 넓은 거실을 만든 집이었기 때문에 다른 층에서 나는 소리도 크게 울려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시공 당시에 요런 게 옵션이었던 아파트였다)
딸이 학원을 가고 토요일 오후가 참으로 고요하다. 윗집 아이는 밖에 나갔을까? 집에 있을까? 엄마는 아이를 조용히 시키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아이를 둘 키웠고, 예전에 살던 집에서 너무 시끄럽다며 달갑지 않은 방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지만 아이는 좀 뛰어야지! 묶어 둘 순 없잖아!
"저기요 저희 집은 평일엔 거의 비어있으니 낮에 아이가 뛰어다녀도 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