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기획자 장PD May 30. 2024

쌓아가는 것만이 내공일까?

최근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인 구본형은 경영 혁신을 컨설팅하는 전문가다. 경영 혁신 전문가답게  조직 개혁을 방해하는 요소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중에서 나는 ‘점진주의’라는 개념이 꽤 흥미로웠다.


점진주의란? 현재의 상태를 두고 미래를 그려가는 것이다. 매일 조금씩 개선하여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 즉 ‘누적’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이러한 점진주의가 개혁과 혁명의 적이다.


그가 말하는 개혁과 혁명은 ‘단절’을 요구한다. 창조적 파괴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현재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백지 위에서 원하는 것을 ‘새롭게’ 그리는 것이다.


개혁과 혁명은 패러다임을 바꾼다. 보편적 가치와 사고의 틀, 제도와 관행을 모두 파괴시키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다. 한 번 깨닫게 되니 과거의 모든 것이 속절없어지는 것,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득도자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처럼 불가에서 말하는 ‘득도’와 같다.


즉, 개혁과 혁명을 한마디로 말하면 ‘다시 하기’다. 이것은 처음 출발부터가 점진주의적 가정 위에 서 있지 않다.


나는 여기서 갑자기 ‘내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에 성장 욕구가 강한 사람들은 모두가 ‘내공’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추구한다. 그리고 내공은 흔히 ‘쌓아가는 것’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매일매일 내가 쌓아가고 있는 것에 집중한다. 나 또한 그 의미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개혁, 그리고 그 개혁과 상극을 이루는 것이 꾸준히 쌓아가는 ‘점진주의’라고 하니 혼란스러웠다.


내가 생각하는 ‘내공’은 꾸준히 쌓아가는 것 ‘축적과 누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꾸준히 쌓아가는 것이 개혁과 상극을 이루는 개념이라면 과연 개혁이 빠진 내공이 ‘내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내공’의 한자를 찾아봤다. 글자의 의미부터 다시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내공 (內功) : 오랜 기간의 경험을 통해 쌓은 능력.


내공에서 ‘공’은 장인 ‘공’ 자와 힘 ‘력’ 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도구를 들고, 힘을 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인데 한자의 의미로 풀이하면 ‘내 안에서 힘을 쓰는 것’이 내공이라는 말의 의미가 된다.


그렇다. 그냥 힘을 쓰는 것이다. 꼭 ‘쌓는 것’에만 한정하여 힘을 쓰는 것이 아니다.


가끔 보면 주위에 굉장히 대단한 브랜드나 기업을 만들고도, ‘내공’이라는 아우라를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러한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기까지의 성공 방식에 갇혀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방식이 이제는 자신의 족쇄가 되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례를 생각해 보면 자신의 분야에서 꾸준히 뭔가를 쌓는 것만이 꼭 ‘내공’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게 이해가 된다. 그럼 진짜 내공의 의미는 뭘까?


자신의 분야에서 꾸준히 쌓아서 만든 결과물을 ‘자기가 쌓은 성’이라고 하자. 그 성을 쌓아나가다 보면 언젠가 자신이 쌓은 성에 갇히는 순간이 온다. 성에 갇히면 어떻게 되는가? 내 앞에 보이던 넓은 세상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시야가 닫힌다. 이때 알아차려야 한다. ‘아 내가 만든 성에 내가 갇혔구나’ 그리고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내가 만든 성안에서 편안하게 쉴 것인지 아니면 부수고 다시 시작할 것인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자기가 쌓은 성’은 물리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신적인 것도 포함한다. 즉, 물리적으로 어떤 조직이나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해서 이런 것을 다 파괴시키라는 뜻이 아니다. 그 물리적인 것을 만들 낼 수 있었던 정신적인 결과물들, 쉽게 말해 자신의 ‘사고방식과 체계’를 버려야 하는 순간에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지금까지의 내 모습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내공’이라는 것은 ‘점진적인 누적’을 해야 할 때인지 ‘개혁’을 해야 할 때인지 구분하는 지혜에서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개혁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면 거기서부터는 ‘누적’으로 쌓아 나가야 한다. 점진주의와 개혁은 절대 ‘함께’할 수 없는 상극의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상호보완적’으로는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또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쌓고, 부수고를 계속 반복해야 하나? 이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는 그렇게 피곤한 작업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 걸까?


내가 쌓은 것들이 내 시야를 가리지 않게 쌓으면 되지 않을까? 무조건 높이만 쌓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만든 성에서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낮아도 넓게 쌓거나 아니면 높게 쌓되 언제든 시야를 확장할 수 있도록 계단을 세우거나 또는 곡선형으로 쌓아가면 되지 않을까? 어쨌든 쌓고, 부수고를 반복해서 내 시야를 가리지 않고,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 이 감각 데이터를 체화시키는 것이 내공을 키우는 과정이 아닐까?


가끔 보면 자기만의 성을 예술로 쌓아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더본코리아의 백종원 대표, 프레인 글로벌 여준영 대표와 같은 20~30년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그냥 시간으로 경력을 채운 사람이 아니다. 그들을 보면 ‘내공’이라는 단어가 바로 떠오른다.


내가 생각한 내공의 개념이 오랜 시간 동안 본인만의 것을 쌓고, 부수고를 반복하며 '자기 시야를 가리지 않고, 예술로 쌓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라면 그들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자기만의 성을 얼마나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긴 세월은 아니더라도, 나는 여태까지 내가 쌓은 것을 얼마나 무너뜨렸는가? 아니 쌓기만 하고, 무너뜨린 적은 있었는가?


쌓아가는 것만이 ‘힘을 쓰는 것’이 아니다. 파괴시키는 것도 ‘힘을 쓰는 것’이다. 쌓고, 부수고 내 안에서 ‘힘을 쓰는 감각’을 계속해서 쌓아가자. 그렇게 힘을 키우자.


결론,

1. 내가 쌓은 누적의 결과들(물리적인 것 또는 정신적인 것)이 나의 시야를 가로막는 순간이 올 때 그것을 스스로 파괴시킬 수 있는 용기와 실행력을 갖추는 것까지가 ‘내공’의 의미다.


2. 내공은 ‘점진적인 누적’을 해야 할 때인지 ‘개혁’을 해야 할 때인지 구분하는 지혜에서 시작한다.


3. 누적의 결과물이 파괴되어도 누적으로 쌓은 감각은 절대 파괴되지 않는다.


4. 그래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여태까지 쌓아온 것들이 나를 도와주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가로막고 있는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스스로 파괴시킬 수 있는 용기와 실행력을 갖추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