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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기획자 장PD May 30. 2024

그깟 의미? 그럼에도 의미!

이번 주에는 이론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의 <초공간>을 정말 재밌게 읽다가 도중에 같은 저자의 다른 책 <마음의 미래>를 충동구매하여 이 책까지 함께 읽게 되었다. 책을 읽는 도중에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구매할 정도라는 건 나에게 엄청난 자극을 줬던 책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최근에 이렇게 했던 적이 아마 1월, 철학자 최진석 교수님의 책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마음의 미래>는 물리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정신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이미 뇌과학 책을 수없이 독파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물론 나도 뇌과학 책을 적게 읽은 편은 아니다) 내가 과학 책을 읽는 이유는 과학적 지식 습득이 목적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본인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가설을 세우고 풀어나가는지 사고의 흐름과 태도, 과정을 알아가기 위해서다.


이런 목적에서 나는 이론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의 글이 좋았다. 그리 어렵지도 않게 글을 쓰면서도 굉장히 유쾌하고, 과감하다. 특히 뇌과학은 본인의 전문 분야가 아니기에 뇌과학, 신경 의학 분야에 대한 전문가들을 찾아가서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답변을 받았는지 글 중간중간에 적혀있는데 나는 여기서 이 저자의 질문들을 읽어 나가는 것이 재밌었다. 왜냐하면 탁월한 답변이 나오게끔 질문의 구조를 잘 설계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정신세계 또한 흥미로웠다. 그래서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요즘 이런 과학 책들을 읽으면서 알게 된 과학적 지식 중 일부 그리고 여기서 느꼈던 생각들을 나의 관점에서 풀어보려고 한다.


*생각을 풀어보기에 앞서 책에서 말하는 모든 지식과 이론을 100%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과학 책을 통해 배웠다. 실력이 저명한 전문가의 의견, 과학적 이론 등 우리는 ‘전문가’‘과학적’이라는 단어에 너무나도 쉽게 현혹된다. (책이 이 정도면 sns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습득하는 지식은 말할 것도 없다) 나 역시도 미치오 카쿠의 책을 인상 깊게 읽은 것은 맞지만 모든 이론을 다 수용하고, 믿겠다는 뜻은 아니다. 이 글은 그저 책 속의 내용 중 내가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을 소재 삼아 지극히 나의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임을 미리 밝힌다.




의식이란 목적(음식과 집, 그리고 짝 찾기 등)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변수(온도, 시간, 공간, 타인과의 관계 등)로 이루어진 다중 피드백 회로를 이용하여 이 세계의 모형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

위의 문장은 저자가 내린 ‘의식’에 대한 정의다. 전후 맥락 없이 저 문장만 보면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저자가 나눈 ‘의식’의 단계를 간단하게 언급해 보자면,


0단계 : 가장 낮은 단계의 의식, 움직임이 전혀 없거나 극히 제한된 운동만 할 수 있으며, 단 몇 개의 변수(온도  등) 만으로 이루어진 피드백 회로를 이용하여 자신이 속한 세계의 모형을 만들어 낸다. ex : 자동온도조절기


1단계 : 스스로 움직일 수 있으면서 중앙신경계를 보유한 생명체. 자신의 위치 변화를 가늠하는 새로운 변수들을 갖고 있다. ex : 파충류


2단계 : 자신이 속한 세계의 모형을 만들 때 공간과 다른 개체까지 고려하는 수준의 의식. 감정이 있는 사회적 동물이 여기에 속한다. (동물 행동에 관한 연구는 아직 미비한 상태이므로 2단계 인식의 세부 수준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감정과 사회적 행동의 종류’를 근거로 구분) ex : 포유류


3단계 : 여러 개의 피드백 회로를 조정하여 과거를 평가하고 미래 예측 모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의식. ‘인간’의 의식이 여기에 속한다. 인간은 동물의 왕국에서 유일하게 ‘내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동물이다. “내일은 어떻게 될까? 다음 주는? 다음 달은? 내년은? 10년 후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등" ‘과거’라는 ‘시간’을 이용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한 차원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꼭 책을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위에 적어둔 내용은 미치오 카쿠의 이론을 정말 단순하게 요약한 것에 불과하다. 어쨌든 위의 내용을 접하면서 내가 생각해 볼만한 지점은 2가지였다.


첫 번째, 이토록 복잡한 인간

0~2단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한’ 변수들을 조합하여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적어도 우주까지는 모르겠고, 지구상에서 가장 진화한 ‘뇌의 의식 수준’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슨에 의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까지 안전하게 운송하기 위한 유전자의 생존 기계다. 물론 리처드 도킨슨의 주장이 ‘진리’는 아니겠지만 솔직히 나로선 반박 불가의 주장이다.


그러나 인간은 유전자가 명하는 본능에만 따라 살지 않는다. 본능을 넘어 계속해서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려고 하고, 자아를 찾으려고 한다. 인간의 이러한 행동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정말 쓸데없는 일이 수도 있다. '다음 세대까지 안전하게 유전자를 운송하기 위한 생존'이라는 본업을 두고, '자아를 찾는' 사이드 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자아’는 무엇일까?


뇌의 내측 전전두피질은 '나'라는 인식을 관장하는 곳이다. 내가 누구인지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부위다. 그러니까 '자아'라는 것은 ’뇌의 느낌’일뿐이다. (만약 우리의 뇌에서 이 기능이 상실된다면 정말 유전자의 생존 기계로만 전락해버리는 것이겠지..?)


그래서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다. 생물학적으로는 유전자의 생존 기계에 불과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한 수준으로 진화한 뇌를 가지고 있어 유전자의 본능에만 복종하지 않고, ‘내가 나라는 느낌’ 즉, 계속해서 자아를 찾으면서, 각자만의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과거의 역할

‘미래 예측’ 능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가장 진화한 의식 수준을 가졌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미래를 예측할 때 주로 사용되는 것이 ‘과거’라는 시간적 정보다. 과거라는 시간적 정보는 ‘기억’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과거라는 시간적 개념을 이용해서 미래를 시뮬레이션 하며 자아인식을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다. 이 말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는 뜻이고(실제로 기억 상실증 환자들이 이렇다고 함), 과거를 뚜렷하게 정립할수록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가 더 뚜렷해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나는 이 지점에서 내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나의 블로그 이웃들이 생각났다. 대부분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를 계속해서 선명하게 만들어 나가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신들의 서사가 담긴 ‘기록’을 꾸준히 한다는 것이다.(서사가 담긴 기록이란 최소한 블로그로 꾸준히 과정의 생각들을 남기는 행위) 기록은 과거를 기억하고, 정립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러니까 내측 전전두피질에서 관장하는 ‘내가 나라는 느낌’ 이걸 계속해서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기록을 통해 과거를 효과적으로 저장하고(기록해두면 ‘장기기억’으로 넘어갈 확률이 높다), 효과적으로 저장된 기억은 ‘장기 기억’ 창고로 저장되어 ‘미래 예측’을 할 때 사용된다. 인간은 미래를 예측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이게 2단계 의식을 가진 포유류와 구분되는 능력이다.

*포유류 중에서도 지능이 높은 동물은 미래 예측을 가진 행동을 가끔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언제까지나 ‘본능’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고, 자주 흔들리는 사람에게 일단 기록하라고 권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기록을 통해 기억을 효과적으로 저장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미래 예측 능력이 떨어져 불안감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1. 이러한 과학적 이론을 통해 ‘오늘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가 확실해진다. 오늘은 내일의 과거가 된다. 우리는 과거를 이용하여 미래를 예측한다. 미래 예측 능력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가장 고차원의 진화 능력이자,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행위다. 절대로 유전자의 생존 기계로만 전락하고 싶지 않다.


2.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고차원으로 진화한 뇌를 가지고 있다. ‘고차원의 뇌’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그 자체가 큰 행운이고, 축복받은 삶인 것이다. 그렇다면 죽는 날까지 나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하며, 삶의 의미를 계속해서 부여해 나가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큰 행운과 축복을 누리는 것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결국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각자의 삶에서 ‘그깟 의미’가 아니라 ‘그럼에도 의미’를 계속해서 부여해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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