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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기획자 장PD May 30. 2024

나는 플랜 B가 없다(feat.J력 83%)

일요일 오전엔 이번 주 평일 5일 동안 내가 썼던 일기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면서 생각 조각에 어떤 글을 써 내려갈지 생각한다. 5일 동안 적었던 일기를 주말에 다시 꺼내 읽으면 마치 내가 다른 사람의 일기를 엿보는 것처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거리감’이 생긴다. 나는 이 ‘거리감’을 이용하여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나의 시야에 ‘객관성’이 부여되기도 하고, 제3자의 시선으로 나의 행동을 관찰하는 관찰자가 되기도 한다.

나의 행동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어떤 한 주의 행동은 재밌기도 하고, 또 어떤 한 주는 안타깝기도 하고, 또 어떤 한 주는 신기하기도 하다. 이번 한 주의 일기를 통해 관찰한 ‘나’는 ‘플랜 B가 전혀 없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저 재미로 보는 mbti 테스트지만 할 때마다 계획을 의미하는 J력이 80% 밑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내가 플랜B가 없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요즘 일기장 속에서 관찰한 나의 모습은 이랬다.

1) 나는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전혀 포기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2) 현재 나의 능력에 대한 한계를 느끼면서도 잠재력도 느끼고 있다.

3) 때로는 불안감이 찾아오지만 원인 모를 자신감이 이를 압도한다.

4)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고 있는 것 같은데 어느새 그 터널 안에서 '걷기'자체를 즐기고 있다.


2022년 7월 무계획 퇴사 후 현재까지 어떠한 조직에도 들어가지 않고, 혼자서 일을 하고 있다. 아마 혼자 이것저것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이것저것 직접 실험을 해보면서 월급보다 더 많이 벌어보기도 했고, 월급에도 못 미치게 벌어보기도 했다. 아마 대부분은 후자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실험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안정적인 월급이 보장되지 않는 이 상황이 불안해야 하는 게 맞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보다 자신감이 쌓이는 게 나도 아이러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근사한 결과를 만들었거나 이룬 것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엔 앞이 깜깜했다. 도저히 그다음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수요일엔 하루 종일 책만 읽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책을 읽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닌데’하며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하루 종일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 그냥 본능적으로 책을 하루 종일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본능적인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하루 종일 책을 읽으니 나의 생각력이 다시 발동하기 시작했고(tmi.독서는 전뇌를 자극하는 활동이다), 다음 날인 목요일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지지부진했던 일들을 짧은 시간 안에 모두 해결하고,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다음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결과 금요일엔 다가오는 다음 한 주를 설레는 마음으로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한 주간의 나의 감정과 행동들을 관찰하면서 지켜본 결과, 나는 전혀 플랜B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내가 퇴사를 하고 다짐했던 플랜A를 시간이 걸리더라도 달성하고 말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플랜B는 없지만 플랜 A-2와 플랜A-3을 세웠다. 말장난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엄연히 그 성질이 전혀 다른 계획이다. 이 속성을 잘 나타내 주는 용어를 빗대어 표현하자면 스핀 오프(spin-off)와 피보팅(pivoting)의 차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스핀 오프(spin-off) :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새롭게 ‘확장’ 또는 ‘파생’시키는 것.

피보팅(pivoting) : 전사적, 전면적으로 ‘전환’시키는 것.


이 두 용어의 핵심은 '파생'과 '전환'이다. 내가 지금 이대로 가다간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으니 아예 다른 대안을 찾아보는 것(예를 들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것, 이걸 선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금 내 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이 아니라 지금까지 스스로 일을 하면서 길러낸 '나의 핵심 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파생'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피보팅(pivoting) 않고, 스핀 오프(spin-off) 하기로 했다.


1년 반 가까이 혼자 일하면서 나는 그동안 나도 몰랐던 나의 잠재성의 ‘씨앗’을 발견했다. 이 씨앗의 정체는 나의 핵심 코어가 될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고, 그것을 단단하게 다지기 위한 의지가 점점 더 강해졌다. 그래서 이 핵심 코어를 중심으로 스핀 오프 하고자 한다. 이번 스핀 오프가 갖는 의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의 플랜A에 대한 가능성들을 찾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우주가 당신 삶 속에 있다.
There’s more space in your life than you think
- NASA -


나는 과거에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잠재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불과 2년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것들을 직접 실행 나가고 있고, 남들을 보며 부럽다고 생각한 역량들을 스스로 훈련해서 기필코 내 것으로 만들어 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루라는 단위로 관찰하면 지금 내가 해나가는 과정이 정말 지지부진하고, 때로는 초라함도 느껴진다. 그런데 이걸 일주일이라는 단위로 관찰하니 시작은 초라한데 결국 난 뭐라도 해서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당장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플랜 B로 전환할 수가 없다.


희망으로 가득 찼던 2월의 시작과 달리 3월의 시작은 막막함이었다. 그 막막함은 내가 곧 플랜 B로 전환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감정이었지만 2주가 지난 지금, 결국 난 플랜 B가 아니라 플랜 A-2로 스핀 오프 하기로 했고, 그 스핀 오프의 새로운 시작들이 3월이 끝나기 전에 또는 4월을 시작할 때 갖춰지게 된다. 즉, 1분기와 전혀 다른 2분기를 맞이할 예정이다.


하루 단위로 보면 초라하고 막막한데, 일주일 단위로 보면 결국 뭐라도 해서든 나아간다. 그런데 한 달 단위로 보면 나의 잠재성이 뚜렷하게 보인다. 결국 나의 이 ‘원인 모를 자신감’은 잠재성이 보이는 한 달, 이 한 달을 구성하는 초라하고 막막함을 살아가는 ‘하루’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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