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방식 <11>

함께 갈 수 있다면

by 목하


11.



새벽부터 내린 눈은 오전에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올해 첫눈이었다.

첫눈이 내린 날 마지막 회의가 있었다. 책 인쇄를 넘기기 전 최종 편집회의였다.

마지막 편집회의를 마치고 잡지사의 첫 책, 창간호는 인쇄소로 넘어갔다. 앞으로 인쇄소를 들락거리며 꼼꼼히 체크하고 수정할 과정이 남아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단계는 완료된 셈이었다.

수없이 고치고 다듬고 의문과 확신 사이에서 헤맸던 단어들이 기사로 완성되고 한 권의 잡지로 출간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창간호의 최종본이 완료된 것이었다. 인쇄된 책을 손에 들기도 전에 벌써 뿌듯해왔다.


박편집장은 창간호 마지막 회의에서 첫 호를 만드는 동안 열심히 뛰어준 기자들에게 감사했다.

"과정과 결과가 모두 만족스럽다면 그것보다 감사한 일은 없을 겁니다. 그것이 쉽지 않지만 저는 창간호를 만드는 동안 모든 것이 나름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흔한 잡지들 중 하나이지만, 그 과정 속에 담긴 기자들의 노력과 정성을 알기에 저에게도 기자들에게도 소중한 창간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정 가운데 각자의 성장과 깨달음의 과정도 있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고요. 앞으로도 우리들은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발전하고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또 그런 잡지사가 되길 바랍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편집장이 인사말을 하는 동안 잡지사 유리창 너머로 함박눈이 세상을 다 덮을 기세로 내리고 있었다. 기자들은 일제히 창밖을 바라보며 낮은 탄성을 질렀다. 각자의 얼굴 위로 마무리의 안도감과 새로운 기대의 빛이 스치고 있었다.

편집장이 나머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사흘 후에 다음 호 기획회의가 있으니 참고하시고. 참신한 기사 기획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편집장의 공지에 누군가 나지막한 탄식의 소리를 낸 것 같았지만 따르는 별다른 말은 없었다. 지금은 다음 일정을 미리 생각하기보다 이 충만함을 마저 즐기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우리 커피 한잔씩 할까요" 명진아가 말했다.


"좋지, 오늘의 여유로움을 맘껏 즐기자고" 안정식도 동의했다.


"제가 맛있는 커피로 테이크아웃 해 올게요" 정기자가 얼른 일어서며 커피주문을 받았다.


"나도 오늘은 커피가 당기네"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김성호도 오늘은 분위기에 따랐다.


명진아는 그동안 맺히는 데 없이 살아가는 것 같아 자꾸 힘이 들어갔었다. 중심이 잡히지 않는 것 같은 자신의 발아래가 늘 미덥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녀는 자기 긍정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그 긍정의 마음이 자주 벽에 부딪히고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을 때의 초라함이 많이 힘들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자신을 봐주기가 쉽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매치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할 수 없다. 근데 생각해 보면 그것들이 꼭 매치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하게 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맞이할 수 있는 가장 지름길을 선택한 사람이 아닐까.

그것이 얼마나 빠른 길인가가 중요하진 않을 것이다. 그 길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까.


'이제 알맹이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믿어봐도 될까.'

명진아는 이제 무언가 중심이 잡히는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수없는 미로와 덤불을 헤매는 길이어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 함께 가는 주변 사람들을 가진다면 그 길은 가볼 만한 길이 되어줄 것이다.


따뜻한 커피에 곁들일 달콤한 베이커리까지 야무지게 챙겨서 정기자가 사무실에 들어섰다. 진한 커피 향이 순식간에 퍼졌다. 사람들이 커피 향을 따라서 모여 앉기 시작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