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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네 May 25. 2023

반려 식물과 단테



온전하지 않은 세계에서





몬스테라 일맥현상


햇볕이 좋은 어느 날 몬스테라 잎에 맺힌 물방울을 발견했다. 신기해서 찍어뒀는데 기록을 하면서 몬스테라 물방울을 검색해 보니까 일액현상, 증산작용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뿌리를 통해 흡수한 물은 줄기를 통해 올라와서 잎까지 전달된다. 이때 수분은 수증기 상태로 기공을 통해 몬스테라 밖으로 배출된다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물을 과다 흡수해서 수분에 의한 압력이 발생했다는 것,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스스로 물을 밀어내는 현상으로 물방울이 맺히게 된 것이다.


​​

놀라워라.. 몬스테라는 필요한 만큼의 물을 먹고 조절한다. 그 이상의 불필요함은 스스로 배출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한 식물이었다. 인간으로 말하자면 자기조절 능력이 뛰어나는 친구다!







수경재배 중 콩고

콩고가 부러졌을 땐 주의를 살피지 않았던 단테가 순간 밉기도 했다. 이기적이라는 표현이 동물에게 적절하지 않지만 인간의 시선에서 단테는 귀리를 먹기 위하여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만 가는 이기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이미 상처받은 콩고는 원망할 시간조차 부족하다. 살기 위해서는 적절히 치료하고 임시 거처로 이동하여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 뿌리가 없이 줄기로만 견뎌내야 하는 콩고는 고인 물의 세상에서 뿌리를 내려야만 한다. 콩고에게 물의 세상은 안전한 세계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 콩고는 온 힘을 다하는 것 같다. 애틋한 집사의 애정 속에서 정직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베란다에서 귀리를 먹고 만족스러운 고양이 단테



인간에게 뿌리를 잃었을 때의 심정은 호흡이 멈추는 것과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아빠, 나의 뿌리가 부재하는 삶이 되었을 때 나의 심정은 그랬다. 단테도 어미 고양이를 잃었을 때 그랬을까.


엄마의 호흡을 마치 나의 호흡으로 여기며 살았던 자궁 속에서, 자궁 밖에서 엄마와 나를 잇는 탯줄이 잘리는 순간 태아는 호흡이 끊긴다. 동시에 그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호흡하며 살아가는 법을 본능적으로 찾는다. 우렁찬 울음을 내뱉으며 자궁 밖의 세계에서 적응하며 살아간다. 엄마 아빠가 부재했던 시간 속에서 열 살의 나는 낯선 세상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살기 위하여 베갯잇을 적시는 밤을 보내며 소리없는 울음을 삼키며 적응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탄력성이 좋은 편이다. 뿌리가 잘리거나 뿌리를 잃더라도 다시금 새로운 호흡을 위하여 정처 없이 살아가니까 말이다. 나를 자라게 할 새로운 가족을 찾든, 친구를 찾든, 일자리를 찾든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하며 뿌리내릴 세상을 찾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를 이루는 세상이 너무나도 중요했던 것 같다. 나를 이루는 세상이 단 한 번도 온전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서, 안전한 대상이든 온전한 세상이든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관심과 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고,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에 촉을 세운다. 과연 나는 온전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인간에게, 동물에게, 식물에게, 모든 생명에게는 온전하지 않아도 자라날 세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온전하지 않은 이혼가정이자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것처럼, 고양이 단테가 야생에서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인간과 더불어 25평 아파트에 적응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 식물들이 뿌리의 세계 원산지에서 자라지 못한 채 화분에 갇히거나 혹은 자신과 맞지 않은 세계의 온습도에 적응하며 사는 것처럼. 우린 모두 온전하지 않은 세상에서 산다. 그럼에도 반드시 호흡하며 자라날 울타리가 필요한 생명들이다. 세상은 온전하지 않지만, 온전한 애정을 주는 대상은 더욱 간절하다. 나에게 아빠가 엄마와 아빠 두 사람 몫의 사랑을 주었던 것처럼 고양이 단테에게 어미 고양이 노릇을 하는 두 명의 집사가 그렇듯이, 식물 친구들에게 나와 남편이 적절한 온습도의 세상이 되어 주듯이 생명인 우리에겐 모두 애정이 필요하다. 나의 주변에 애정 없이 홀로 서는 생명은 없다. 온전하지 않은 우리는 서로에게 애정을 주며 서로에게 온전한 세상이 되어준다. 온전하지 않은 세계에서 우리는 사랑으로 반려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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