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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업계 관계자가 된다는 것

by 지윤

다시 백상 시즌이 돌아오고 있다. 작년 이 맘때쯤 한창 준비한다고 바빴던 것 같은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온 백상 시즌. 입사하자마자 프로그램을 런칭하고 동시에 백상예술대상 준비를 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조직개편으로 팀이 갈라지는 바람에 하던 일들을 인수인계하고 당일에 현장지원만 나갔었다. 그게 59회 백상예술대상이었고 그로부터 1년 뒤, 60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을 맡아서 준비했다. 회사의 잦은 조직개편과 업무 변화로 어쩌다보니 작년에는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담당자가 되어 맡은 백상은 감회가 남달랐고 새로웠다. 지금 다시 백상 관련 콘텐츠가 조금씩 올라오는 걸 보니 이 시점에서 회고글을 한번 남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게 되면, 그 일이 업이 되면, 내게 환상적인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낸다. 환상적이다."

<매뉴팩트 커피, 커피 하는 마음>, 김종진


최근에 건대에 있는 독립서점 겸 카페인 인덱스샵에 갔다가 본 문구. 이 때의 나를 한문장으로 표현하는 말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나에게 환상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전에 영화 <다음 소희>의 GV를 했다. GV라는 행사를 처음 경험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코멘터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공감의 연쇄'라는 말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는데, 제작진이 주인공의 이야기에 공감해서 만들어낸 작품이 극장에서 관객에게 닿았을 때 또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였다. '마음은 통한다'는 이야기를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면서 몸소 느끼게 되는데, 영화쪽도 비슷하구나 생각했다.


GV가 끝나고 '콘텐츠가 가져올 수 있는 선한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왜 콘텐츠가 하고 싶었는지, 왜 이 업계에 그토록 오고 싶어했는지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해봤다. 여전히 의미와 재미를 같이 잡는 콘텐츠에 대한 의문점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 가능성을 찾았달까.



그리고 백상 당일. 전에 홍보대행사 미팅을 할 때 어차피 백상날은 기사를 내도 백상때문에 묻힌다는 얘기를 진담반, 농담반으로 했는데 정말 그랬다. 기사는 물론 각종 SNS, 유튜브, 커뮤니티가 다 백상 얘기뿐이었다. 정작 현장에서는 백스테이지에만 있다보니 누가 수상을 하는지, 어떤 소감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팔로우업하기가 어려웠는데 막상 행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영상을 다시 보니 새삼 놀라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행사를 진행하는 게 엄청난 일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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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백상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축하무대. 실제로 작품 속에서 사회적 약자 역할을 맡았던 배우분들이 노래를 하신다는 것도 감동 포인트였지만 중간에 수어로 노래하는 부분이 충격적으로 좋았다.


생각해보면 이 회사 면접이 유독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그 어떤 회사보다도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해서인데, '콘텐츠 기업에서 왜 사회공헌을 해야 하는지', 또 '선한 것과 재미를 같이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깊게 나눴다. 그동안 면접에서 깊게 다루지 않았던 주제라 또 새로웠고, 그 어느 때보다 내 이야기를 많이 했던 면접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콘텐츠가 많아졌다는 게 59회 백상의 큰 주제이기도 했는데, 면접에서 나눴던 이야기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역시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것이구나 싶기도 했고. 앞으로도 계속 '좋은 콘텐츠'를 향한 고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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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연극 부문의 하지성 배우님 수상소감은 유독 더 감동적이었다. 대학생 때 장애인 예술가와 함께하는 연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이때의 경험이 또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싶어서 더 벅차올랐던 것 같다. 배우님의 수상소감은 물론 장애인 연극배우가 백상 무대에 서서 직접 소감을 한다는 것도 너무 멋있었다.

역시 의미없는 경험은 없다. 모두 다 필요한 과정이었을 뿐.






어린 시절에 '제가 배우라는 꿈을 포기하기 않는다면 언제가는 대상을 받을 수도 있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그 꿈을 이루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세상이 달라지는 데 한몫을 하겠다는 그런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이 작품을 하면서 적어도 이전보다 친절한 마음을 품게 할 수 있기를, 또 전보다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들을 다름으로 인식하지 않고 다채로움으로 인식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연기를 했었는데요. 그 발걸음에 한 발 한 발 같이 관심 가져주시고 행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자폐인에 대한, 또 변호사에 대한 저를 스쳐가는 생각들이 혹시 저도 모르게 갖고 있는 편견으로 기인하는 건 아닌지 매 순간 매시간마다 검증하는 게 꼭 필요했었는데요. 처음으로 저 스스로의 한계를 맞닥뜨릴 때가 있어서 스스로의 좌절들을 딛고 마침내, 마침내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인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라는 대사였는데요. 영우를 통해 이 대사를 전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나는 알아도 남들은 모르는, 또 남들은 알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그런 이상하고 별난 구석들을 영우가 가치 있고 아름답게 생각하라고 얘기해 주는 것 같아서 많이 배웠습니다. 어렵더라도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수긍하고 포용하면서 힘차게 내디뎠던 영우의 발걸음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습니다.
제59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박은빈 수상소감 중


두고두고 보고 싶은 글이 아닐 수 없다. 현장에서 본 배우님은 선함으로 밝게 빛나는 눈을 가진 배우였다. 배우가 이렇게 진심으로 캐릭터를 대하고 이런 좋은 태도를 가지고 작품에 임했기 때문에 대상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는 일, 그리고 내가 그 일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에서 주는 보람이었던 것 같다. 그게 모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보람이기도 하지 않을까.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되는 경험. 얼마전까지만 해도 관객석에 앉아있던 내가 어느덧 스탭이 되어 백스테이지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순간들.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면서 내게 벌어진 환상적인 일들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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