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라이프
2017.5.20
나를 제외한 3명이 같이 사는, 북적북적한 듯 하지만
그다지 북적거리는 것도 아닌 이 집에서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타이밍은 많지 않다.
모두 일어나지 않은 고요한 아침,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서 이를 닦을때, 머리를 감을 때,
혹은 어느 날 오후 다들 일이 있어서 비어있는 집에
고요한 거실과 거실에 가득 들어찬 따듯한 햇볕만 나를 반겨줄 때,
그리고 모두 다 집에있는 저녁시간에는 더더욱 즐길 수 없는 혼자만의 시간.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플라스틱 샤워 부스 안으로 끼긱 소리를 내며 들어가
끼기긱 소리를 내며 닫고 따뜻한 물아래 서있을 때.
물방울 물방울의 온기 속에서 오롯이 혼자가 된다.
살짝 추운 듯한 이 집에서 가장 포근한 따뜻함을 비로소 여기에서 느낀다.
비좁고 자세히 보면 까만 물 때가 잔뜩 끼어있는 이 작은 샤워 부스 안에서.
아직도 불룩 나와있는 배를 보면서
저녁에 무얼 먹었는지 되새김질 하고, 내일 뭐할 지 고민하고,
샤워하기 전까지 하다 왔던 일이나 보다 왔던 영화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했던 말이나 누가 나에게 했던말을 되짚어 보기도 하고.
생각보다 물 아래에서의 시간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되돌아보기에 충분하다.
씻고 나가면 뭘 해야지, 계획까지 세우는데
왜 막상 그 따듯한 부스에서 나오면 이런 저런 그 많은 생각들을 다 까먹고
화장지운 맨 얼굴에 온몸 가득 따듯함만 안고 나오는지..
‘샤워할 때 그거 생각했었는데, 다까먹었어.’
‘물에 다 씻겨 내려갔나보네.’
평소 그다지 감상적이지 않은 우리집 메이트가 내뱉은 한마디는
조금 인상적이었고 나는 감동마저 받았던것 같다.
감동 받기에 충분한 늦은 시간과 멍한 머리였으니까 더더욱.
‘생각들이 물에 씻겨 내려갔나봐.’
곱씹을수록 정겨운, 샤워기의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