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 왜 살아? 그냥 산다 # 죽지 못해 산다
어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정말 나 심각한 우울증인가. 정확한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에 어제는 그냥 누워있기만 했다. 너무 울다 보니 지쳐 잠들었다 다시 깨서 이런저런 생각하다 다시 잠들고 울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내 생각은 이렇게 우울할 거면, 이렇게 인생이 힘들 거면 왜 살아야 하지? 왜 태어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께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실 것 같아 이야기는 못해봤지만, 진짜 궁금해졌다. 이렇게 하루하루 고민하고 선택하고 불안한 삶을 왜 살아야 하는 건지.
단순한 방법이지만 유튜브에 검색해 봤다. 왜 사나요? 사람은 왜 살아야 하나요?라고. 그랬더니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아영세상에서 이런 질문들을 이미 사람들에게 인터뷰 한 영상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끔 삶의 지혜를 얻고 싶을 때 검색해 보는 법륜스님의 영상도 있었다.
https://youtu.be/lwfPUFMzAx8?feature=shared
왜 사느냐? 그냥 산다. 이게 답이에요. 사는데 이유가 있어서 사는 거 아니에요. 오늘 저녁에 이유 없다고 죽을까? 살까? 사는 데는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잘못 생각해요. '이유가 있어서 산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이 태어날 때 이유가 있어서 태어나요? 그냥 태어나요? 태어나는 게 먼저 있고, 이유 찾는 건 나중에 있어요. 존재가 먼저예요. 언제든지. 그러니까 왜 사느냐는 의문은 의문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왜 사느냐? 그냥 산다. 굳이 질문하면 '그냥 산다' 그래도 자꾸 더 물으면 '안 죽어서 산다' 왜? 사는 게 먼저라는 말이에요.
왜 사느냐? 그냥 사는 거다. 이유가 있어서 사는 것 같지만,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거다. 우리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있나? 없다. 존재가 먼저예요. 언제든지.
내가 태어난 데는 이유가 없다. 그냥 태어났고, (나처럼 더 굳이 굳이 질문하는 사람에게 답하면) 안 죽어서 산다는 게 굳이 답이면 답이라는 거다. 내가 요즘 그랬다. 죽고 싶다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살고 싶은 마음도 크게 없었다. 나는 32년 동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후회가 된 하루가 없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살아서 '덜 열심히 살걸, 그 나이 때에 맞게 더 즐기면서 살걸'에 대한 후회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앞으로도 애를 쓰며 살아야 한다면 더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죽을 용기는 있는가? 그것도 없었다. 일단 죽는다고 생각하면 남을 우리 부모님, 특히 우리 엄마가 제일 걱정됐다. 자살한 딸을 둔 엄마의 삶은 죄책감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을 것 만 같아서 (내가 아무리 유서에 엄마 덕분에 지금까지 산 것이라고 말해도, 우리 엄마는 두고두고 고통 속에서 살 것만 같아서)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다만, 내 일 내가 눈이 뜨지 않길, 인류가 동시에 멸망하는 일이 생겨 우리 가족이 누군가를 잃은 슬픔 속에 살지 않고 다 함께 하늘나라에 가길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많다. 그런데 이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나의 이런 마음 때문에 지구가 멸망하길 기도하는 것도 웃기고 너무 못된 마음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허락하는 한) 살긴 살게 될 것이다'가 나의 결론이었다. 그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미래의 일을 생각하며 자꾸 부정회로를 돌렸더니 불안하기만 하고 힘들었는데, 그건 내가 살기 힘든 이유를 찾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두 번째, 어차피 사는데 '어떻게 사는 게 좋으냐' 어떻게 에서 욕심을 부리고 살 거냐, 베풀고 살 거냐, 즐겁게 살 거냐, 괴롭게 살 거냐, 도와주고 살 거냐, 이거는 '어떻게'에 대한 답이에요. '왜'가 아니고. 어떻게 사는 게 좋으냐. '욕심부리고 사는 게 좋다' 그럼 그렇게 살면 되고 '베풀고 사는 게 좋다' 그럼 그렇게 살면 돼요. 그런데 핵심은 그거예요. '베풀 거냐 안 베풀 거냐'는 부차적이고 '즐겁게 사느냐 괴롭게 사느냐' 이게 관건이에요. 살다 보면 괴로울 때가 있어요? 없어요? 좋아요? 안 좋아요? 즐거운 거는요? 좋지요. 누구나 다 즐겁게 살고 싶어 해요. '어떻게 하는 게 즐겁냐' 이렇게 봐야 해요. 그러니까 '베푸는 게 오히려 즐겁다' '도움을 받고 사는 게 괴롭다' 이러면 베풀면 살면 되고 나는 도움을 받고 사는 게 즐겁다. 그럼 도움을 받고 살면 돼요. 도움을 주고 사는 게 좋으냐 도움을 받고 사는 게 좋으냐. 이런 건 정해진 게 없어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거죠?) 그럼요. 자기 좋은 대로 하면 돼요. 자기 좋은 대로.
살 거라면, 어떻게 사는 게 좋으냐? 이것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즐겁게 사느냐 괴롭게 사느냐' 이게 관건이다. 당연히 괴롭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몸과 마음 건강하게,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이다. 이는 내가 다른 사람이 정말 그렇게 살고 있길 바라면서, 나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을 보여준다.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삶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괴롭지 않게, 너무 많은 생각을 해서 머리가 터지지 않게, 적당히 내 삶에 만족하면서, 나랑 보내는 시간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편안한 시간이길 바라는 게 내 마음이다. 근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즐겁게 사느냐 괴롭게 사느냐' '베푸는 게 오히려 즐겁다 하면 베풀면서 살면 되고, 도움을 받고 사는 게 즐거우면 도움을 받으면 살면 된다. 정답은 없어요. 자기 좋은 대로 하면 돼요. 자기 좋은 대로.
내가 좋은 대로가 무엇일까. 이게 어려워서 방황 중인 것 같다. 분명히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찾고, 의미를 찾으면 (힘든 정도에 상관없이) 나름 즐겁게 행동에 옮기고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이었는데. 이게 요즘은 너무 힘들다. 내가 하는 일에 의미가 없는 것 같으니 나 스스로가 쓸모없게 느껴지고, 부끄럽고, 뭐 하면서 살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자기 좋은 대로. 문득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가 좋은 대로'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나도 즐겁게 사는 삶을 택하고 싶은데.